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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 김길웅 시인

by 동파 2025.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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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요,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
세종 임금의 말씀이다.
먹을 게 없어 물로 배를 채우던 적빈의 시절에 가장 절실한 것이
 ‘밥’이었다. 먼저 보리밥, 조밥이 떠오른다. 고구마에 좁쌀을 섞던 
밥도 먹었다. 고구마를 몇 도막으로 썰어 넣고 좁쌀은 눈 밝은 닭이나 
먹음직이 섞었다. 제주에선 산도쌀로 지은 밥을 ’곤밥‘이라 했다. 
제삿날 아니면 명절날에나 먹을 수 있던 제주의 귀한 쌀밥이었다.

1970년 산업화 이후 경제 사정이 나아지면서 한국인의 밥상에 
오른 흰쌀밥이 밥이란 말 위로 떠오른다. 
아, 어머니가 내 생일날 조밥 짓는 솥에 양은 그릇에 산도쌀 두어 줌 
넣고 짓던 반지기밥이 생각난다. 산도쌀에 좁쌀을 반반 섞었다고 
반지기라 했을 것이다. 목으로 잘 넘어갔다.

‘이밥에 고깃국’이라 하면 어려웠던 시절 풍요의 상징이었다. 
너나없이 흰쌀밥에 고기가 들어간 국을 한 번 먹어 봤으면 하고 
다들 침을 삼켰었다. 삶의 목표였다. 밥은 한국 음식의 왕이다. 
밥 이외의 음식은 오로지 밥을 먹거나 밥으로 모자라는 영양소를 
채우기 위한 보조 구실 이상의 것이 아니다.

한국인에게 식사는 ‘밥먹기’로 각인돼 있다. 
푸대접의 대명사로 ‘찬밥 신세’라 한다. 
남의 밥이나 얻어먹는 처량한 신세를 가리킨다. 
1950년대에는 남의 집을 돌아다니며 밥을 구걸하던 거지가 많았다. 
처량한 신세였다. 
제주 사람들은 인심이 후해 거지가 오면 먹던 밥 한술이라도 먹여 보냈다.

밥에도 등급이 있었다. 나라님에게 오르면 수라, 양반이 잡수면 진지, 
머슴이 먹으면 입시, 나이나 신분이 비슷한 사람이 먹으면 밥, 
제상에 올리면 진메다. 밥이 생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백수건달로 빈둥거리다 직업을 갖는 것을 밥은 벌어서 먹고 산다고 한다. 
퍽 하면 입에 올리는 말로 ‘밥맛없다’고 한다. 재수없다는 뉘앙스다. 
원래 밥맛 떨어진다에서 떨어진다가 생략되고 밥맛 두 음절로 축약된 것이다.

지금 중장년 세대가 어렸을 때, 끼니를 거르는 것을 안타까워해
 ‘밥은 먹었느냐?’가 흔히 하는 인사말이었다.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에게서 전화가 오면, 으레 하는 말도 ‘밥은 먹고 다니냐?’였다. 
안부를 그렇게 묻곤 했다. 어린아이도 길에서 동네 어른을 만나면
 “밥 먹읍디가?”라 인사했다. 인사치레로 아주 입에 밴 말이었다.

‘밥도둑’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밥맛에 잘 맞는 맛을 가진 식품을 밥에 곁들이면, 
그것만으로도 밥 한 그릇 뚝딱 비울 수 있다 해서 하는 말이다. 
비근한 예로 멸치볶음 같은 것이다. 밥은 모든 음식의 대유(代喩)다. 
그러니까 식사와 주식을 뜻하는 말과 중의적(重義的)으로 쓰인다. 
치킨, 피자, 햄버거 따위 밥이 전혀 없는 음식을 차려놓고 ‘밥 먹자’ 하지 않는가.

요즘에 밥이 없어 라면을 먹는다면 별로 귀에 오지 않는다. 
없다고 투덜대지만 옛날처럼 ‘눈물 젖은 빵’ 얘기는 사실감이 떨어지는
 것 같다. 어릴 때, 고구마밥을 받아안고 좁쌀을 골라 먹던 나도 
하루 세끼는 밥을 먹는다. 
오래전 학생 때 시내에서 자취하다 방학이 돼 집에 갔을 때, 
고봉밥을 꾹꾹 눌러 떠주던 어머니가 그립다.

 

 

삼양 바닷가~떠나가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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