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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생활

제주 4.3 제주대학 정향신 학생 추념사

by 동파 2019.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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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3일

제주도에 살아가면서 제주섬에서 있었던 이야기는

잘 알지를 못한다.

오늘

하던 일손을 멈추고 눈물을 닦으면서

제주대학교 정향신 학생의 추념사를 들었다.

질곡에 쌓여 숨어있던 슬픈 역사의 증언이

눈물흘리게했다.


김연옥 할머니와 대학생인 정향신 손녀






"1948년 일곱살이었던 아이는 부모님 손을 잡고 불타는 마을을 떠나 매일 밤마다
이 굴 저 굴 도망을 다녀야 했습니다. 눈이 많이 내린 터라 맨발이 참 시렸습니다.
끝내 잡혀간 곳은 서귀포 정방폭포 인근 수용소였습니다. 주먹밥을 하나 먹었을까.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오빠랑 애기였던 남동생까지
 군인들이 다 끌고 나갔는데, 마지막 끌려가는 아버지가 눈앞에서 발로 밟히고 몽둥이에
 맞는 걸 본 아이는 울고불고 난리를 쳤지요.
순간 누군가가 확 잡아챘고, 아이는 그만 돌담에 머리를 부딪쳐서 기절을 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혼자 깨어나 살아남은 그 아이의 이름은 김·연·옥.입니다."
"저는 할머니에 대해 몰랐던 게 너무 많았어요. 할머니가 글을 쓸 줄 모르셨더라고요.
세뱃돈 봉투에 제 이름 정향신 세 글자를 써 주셨던 2년 전 그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할머니 머리에 애기주먹만한 움푹 파인 상처가 있는데요. 그게 4.3 후유장애였다는 것도
작년 4월에야 알았어요. 심지어 10살 때까지 신발 한 번 못 신어본 고아였다는 사실도
믿기 힘들었고요."
"할머니는 혼자 바닷가에 자주 나가셨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우리 할머니는 바다를 참 좋아하시는구나'라고만 생각했었죠.
차마 믿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할머니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오빠와 동생이 하루 아침에,
땅도 아닌 바다에 던져져 없어져 버렸다는 사실은... 당시 할머니는 고작 8살이었는데..."
"할머니는 물고기를 안 드세요. 부모, 형제가 모두 바다에 떠내려가 물고기에 다 뜯겨 먹혔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참으면서 멸치 하나조차 먹지 않았다는 사실도 저는 최근에야 알게 되었죠.
할머니의 바다를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너무 미안해요, 할머니. 할머니 삶에 그런 끔찍한 시간이 있었고
 멋쟁이 할머니가 그런 아픔에서 살고 계셨는지 몰랐어요."
"나는 지금도 바닷물 잘락잘락 들이쳐 가민 어멍이영 아방이 '우리 연옥아' 하멍 두 팔 벌령 나한테 오는거 닮아.
그래서 나도 두팔 벌령 바다로 들어갈뻔 해져..." (나는 지금도 바닷물이 찰랑찰랑 들어오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우리 연옥아' 하면서 두 팔 벌리고 나한테 오는 것 같아. 그래서 나도 두팔 벌려서 바다로 들어갈뻔 하지)

고아가 된 이후 10대의 시간을 대구와 부산, 서울에서 고생고생하다 뿌리를 잊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다시
고향 제주로 돌아왔을 때는 열여덟살. 김연옥 할머니는 이후 시신 하나 없는 '헛묘'를 조성해 여태껏 매년
정성스럽게 벌초를 하고 있다.
 "할머니. 할머니는 울 때보다 웃을 때가 훨씬 예뻐요.
그러니 이제는 자식들에게 못해준 게 많다고 미안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할머니는 그 힘든 시절을 묵묵히 견뎌온 멋진 사람이에요.
 할머니, 저랑 약속해요.
이제는 매일 웃기로."
 

제주섬에서 다시 배우는 기회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