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통(仲長統)의 낙지론(樂志論)
중장통(仲長統)의 자는 공리(公理)며, 후한(後漢)시대의 산양(山陽)사람이다.
학문을 좋아하고 문사(文辭)가 풍부하였다.(179-219) 처음엔 출사(出仕)를 피하고
초야에 은거(隱居)하며 스스로 즐거워(自樂)하는 삶을 즐겼으나 후에 조조(曹操)의
군사(軍事)가 되기도 하였다. 호방하여 거침없이 자기주장을 토(吐)하고 초야에
묻혀 살면서도 재상들과 그 경지를 바꿀 수 없는(不換三公) 경지의 마음으로 살았다.
이때에 지은 아래 글은 유명한 명문(名文)으로 후세에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회자(膾炙)된 글이다.
락지론(樂志論)-중장통(仲長統)
使居有良田廣宅(사거유양전광택) : 내가 사는 곳에 좋은 밭과 넓은 집이 있어
背山臨流(배산임류) : 산을 등지고 시내가 앞으로 흐르며
溝池環匝(구지환잡) : 물도랑과 연못이 집을 둘러 있고
竹木周布(죽목주포) : 대나무 숲이 집을 둘러싸여 울타리가 되었다.
場圃築前(장포축전) : 타작마당과 채소밭이 앞에 펼쳐져 있고
果園樹後(과원수후) : 과수나무들이 뒤에 심어져 있다
舟車足以代步涉之難(주차족이대보섭지난) : 배나 수레가 있어 길을 걷거나
물을 건너는 어려움을 대신하고
使令足以息四體之役(사령족이식사체지역) : 부릴 사람이 있어 몸으로 하는
수고를 대신해 준다.
養親有兼珍之膳(양친유겸진지선) : 부모님을 봉양할 때는 맛있는 음식도 있고
妻孥無苦身之勞(처노무고신지로) : 처자식에게는 몸을 괴롭히는 수고가 없다
良朋萃止則陳酒肴以娛之(양붕췌지칙진주효이오지) : 좋은 친구들이 모여오면
술과 안주를 준비해서 즐기며
嘉時吉日則烹羔豚以奉之(가시길일칙팽고돈이봉지) : 좋은 때 좋은 날이면
양과 돼지를 삶아 제사를 지낸다.
躕躇畦苑(주저휴원) : 밭이랑이나 동산을 거닐고
遊戱平林(유희평림) : 평지의 숲에서 놀며
濯淸水(탁청수) : 맑은 물에 몸을 씻고
追凉風(추량풍) : 시원한 바람을 쏘인다.
釣游鯉(조유리) : 헤엄치는 잉어를 낚시질하고
弋高鴻(익고홍) : 높이 날아가는 기러기를 화살로 잡기도 한다.
風於舞雩之下(풍어무우지하) : 기우제 제단의 아래에서 바람을 쏘이다가
詠歸高堂之上(영귀고당지상) : 나의 정자로 시를 읊으며 돌아온다.
安神閨房(안신규방) : 조용한 방에서 마음을 평안히 하여
思老氏之玄虛(사노씨지현허) : 노자(老子)의 현묘한 사상을 생각해보고
呼吸精和(호흡정화) : 정신의 조화로움을 호흡하여
求至人之彷彿(구지인지방불) : 지인(至人)과 닮아지기를 구해본다
與達者數子(여달자수자) : 학문에 통달한 몇몇 사람과
論道講書(논도강서) : 도를 논하고 책을 강술하며
俯仰二儀(부앙이의) : 하늘과 땅을 내려다보고 올려보며
錯綜人物(착종인물) : 고금의 인물을 종합하여 평가해본다.
彈南風之雅操(탄남풍지아조) : 남풍의 전아한 가락을 타보고
發淸商之妙曲(발청상지묘곡) : 청상(淸商)의 미묘한 가락을 연주한다.
逍遙一世之上(소요일세지상) : 세상을 초월한 그 밖에서 놀며
脾睨天地之間(비예천지지간) : 천지의 사이의 사물을 흘겨보면서
不受當時之責(불수당시지책) : 세상일에 책임을 지지 않고
永保性命之期(영보성명지기) : 타고난 목숨대로 영원히 보존한다.
如是則可以凌霄漢(여시칙가이릉소한) : 이와 같이 하면 은하계의 하늘을 넘어서
出宇宙之外矣(출우주지외의) : 정신이 우주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니
豈羨夫入帝王之門哉(기선부입제왕지문재) : 어찌 제왕의 문 들어감을 부러워하겠는가?
낙지(樂志)란 말은 ‘자신의 뜻대로 즐거워한다.’는 말이다. 뜻은 곧 마음이니
마음이 즐겁다는 것은 행복하다는 말이다. 사람의 행복은 그 삶이 만족해야하는 데,
사람마다 자족(自足)하는 기준이 달라서 획일적으로 정의하기는 힘들다.
이 낙지 론을 쓴 중장통은 41세에 세상을 떴지만, 그가 젊은 시절에 이미 인생을
일찍 달관해서 보통사람들이 추구하는 부귀공명은 안중에 없었지만,
이 글을 읽어보면 다분(多分)히 이상과 현실을 집합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기본적으로 삶의 조건을 갖춰야하고, 그 것도 이상적으로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먼저 사는 집의 좌처(坐處)가 이상적이다.
여기서 ‘집 이 산을 등지고 시내를 앞에 두고(背山臨流)’는 풍수지리(風水地理)학적으로
이상적인 양택(陽宅)의 모습이다. ‘텃밭에 물을 댈 도랑이 흐르고,
대나무 숲은 울타리가 되고, 앞에는 텃밭이 펼쳐지고, 고일나무들은 뒤뜰에
심겨져 있는(溝池環匝 竹木周布 場圃築前 果園樹後)’ 모양은 가장 이상적인 집의 형태다.
우선 내가 살 집이 마음에 드는 모든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다음은 생활여건이 만족해야한다. ‘ 물길에 이용할 배도 있고, 타고 다닐 수레가 있어
건너고 걸어 다닐 걱정이 없다. 부릴 사람이 있어 어려운 일을 대신해 줄 수도 있으며
(舟車足以代步涉之難 使令足以息四體之役), 좋은 음식으로 부모님을 봉양할 수 있고,
처자식들 고생시키지 않으며(養親有兼珍之膳 妻孥無苦身之勞), 좋은 벗들이 모이면
술과 안주를 대접하고, 명절 때면 양과 돼지를 삶아 제사도 지낼 수 있다
(良朋萃止則陳酒肴以娛之 嘉時吉日則烹羔豚以奉之)’ 이처럼 물질적인 풍요가
갖추어져야한다는 것이다.
즉, 의식주(衣食住)가 해결된 뒤에는 고상(高尙)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 들이나 정원을 산책하고, 숲속에서 놀이도 해본다. 맑은 시냇물에서 몸을 씻고
언덕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쐬어본다. 연못에서 잉어도 낚아보고 활을 당겨
공중에 나는 기러기도 쏘아본다. 옛날 공자(孔子)가 하셨던 것처럼,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던 무우(舞雩)언덕 아래서 바람을 쐬다가 시를 읊으며 나의 정자로 돌아온다.’
‘조용한 방에서 정신을 편안히 하여 노자의 현묘한 사상을 생각해보고, 숨쉬기를
조절하며 정신을 집중해서 도의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닮아본다.
(安神閨房 思老氏之玄虛 呼吸精和 求至人之彷彿) 밖에서 돌아와서는
정신적 수양으로 자신을 수련하기도 한다.
다시 일상(日常)으로 돌아와서 ‘학문에 통달한 고상한 벗들과 모여 도에 대한 것과
책에 관한 내용을 의논하고, 천지에 신비한 일들도 따져보며, 옛 사람들의 살아온 일도
이야기해본다. 흥이 나면 시경(詩經)의 남풍(南風)편도 거문고가락에 실어서 타보아
맑고 고상한 상성의 음율(商音)도 발성(發聲)해본다. 세상을 초월한 세계에 놀아보고
자연의 이치를 바라본다. 세상의 잡다한 일에 책임지지 않고(不受當時之責) 주어진
천명대로 스스로 보전한다.(永保性命之期) 이처럼 살면 땅위에 살아도 나의 정신이
하늘 은하계(銀河系)를 넘어 우주(宇宙)밖에서 소요(逍遙)함 같으리니,
나 어찌 제왕의 문을 부러워하겠는가?’ 라고 하였다.
주어진 여건이 열악해도, 열악한 환경을 잊고 스스로 자족(自足)하며 살아간
선인(先人)들도 있었다.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나 시인 도연명(陶淵明)같은 분이다.
그러나 부모처자를 굶기면서 정말 마음이 편안했을지는 의문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최소한의 의식주(衣食住)가 해결된 뒤에 마음의 평정을 얻게 마련이다. 살기 위한
수단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불의(不義)를 자행(恣行)한다면 마음이 편할 수는 없으리라.
순리(順理)로 얻은 재물위에 평안한 마음을 얻어서 자신의 뜯을 즐기는(樂志)의
세계야말로 현실적이고 이상적이지 않을까?
즐거워할 조건이 충족되고도 즐기지 못하는 사람 많고, 비교적 다 갖추지는 못하였어도
그 것으로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 더러는 있다. 나의 경우는 선생이 추구하는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으나 게으르고 부족하여 다 즐길 줄 모르니 항상 부끄러울 뿐이다.
-春江 서정건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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