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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2

고견사(古見寺)배익천(裵翊天)선생 사적비

by 동파 2015.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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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거창군 가조면 의상봉길 1049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 1번지
 전화번호055-942-1333


 
고견사(古見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신라 애장왕 때 순응(順應)과 이정(理貞)이 창건하였으며,
1360년(공민왕 9)달순(達順)과 소산(小山)이 김신좌(金臣佐)와 함께 중건하였다.

1395년 태조가 고려왕조의 왕씨(王氏)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전지(田地) 50결을 내리고,
 매년 2월 10일 내전의 향(香)을 보내서 수륙재(水陸齋)를 행하게 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교종에 속하였으며, 1414년(태종 14)부터는 1월 15일 수륙재를 행하였다.
 1424년(세종 6) 사원의 승려 수와 전지의 결수를 정할 때, 45결이었던 전지를 100결로
 늘리고 승려의 수를 70명으로 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산신각·요사채 등이 있으며, 유물로는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170호로 지정된 범종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63호로 지정된 석불, 탱화 4점, 《법화경》
등이 있다.

 

 

 

1988년11월15일 준공식 거행

 

혜암큰스님 참석

 

고견사(古見寺) 복원중건기

 

우두산 의상봉에 위치하고 있는 고견사는 신라 문무왕 7년(서기 667년)에 신라 고승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된 이름난 고찰이다. 그러나 지난 6.25동란 등을 겪어 오면서 거의 폐허가 될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독실한 불자이신 본인의 어머님이신 대원행보살 전덕녀 여사께서 평생을 두고 소망하시던 바이며
지역주민과 신도들이 한결같은 숙원사업인 고견사의 복원을 본인에게 부탁하시었다.

그리하여 서기 1987년 대웅전 건립공사를 시작으로 2001년까지 15년에 걸쳐 종각, 약사전, 요사채,
 나한전, 천성문 중건에 이르기까지 대역사를 이루게 되었다. 특히 일본인 반바 신이치[番場新一(번장신일):
日本(일본) 東京都(동경도) 련마구(練馬區) 거주] 사장께서 500관이 넘는 대범종을 제작 시주하시었다.

이 모든 공사의 계획과 실행은 이 고장 출신인 이재완 신도회장과 본인의 아우인 배익열이 맡아 하였다.
 이재완 회장은 본인의 요청으로 고견사 복원추진위원장 직을 맡으면서 김정애, 최민용 두 부회장과
오석교 총무와 함께 고견사의 복원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게 하였다.

공사는 도로가 포장되기 전이었으므로 거대한 대웅전을 포함한 부속건물의 건축에 필요한 모든 자재의 운반은
 험난하기 이를 데 없는 산악길을 지역주민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이루었다. 대웅전의 대들보는 20명이 넘는
 인부가 목도로서 현장까지 운반하는데 많은 어려움과 위험한 고비를 수없이 넘겼다. 또 500관이 넘는 육중한
 범종의 운반은 밧줄로 끌어 올려야 하는 일로 2km에 불과한 거리를 15일 간이나 소요되는 난공사 중의 난공사였다.

15년간 긴 세월 동안의 난공사 현장을 성법, 원각 두 주지스님이 감독과 감리를 맡아 주셨으며, 성법스님은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원각스님은 1990년부터 2001년까지 고견사 주지소임을 다해 주었다.

고견사 천성문 완공에 즈음하여 이런 어렵고 힘든 일을 무사히 완공하게 하여 주신 부처님의 은덕에 마음 속
깊이 감사 드리며, 또 온갖 고통을 감수하면서 노고를 하여주신 지역주민과 신도들 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부처님의 자비가 온 누리에 가득 하시기를 기원하면서 고견사의 복원 중건을 영세토록 기념하기 위하여 여기에
조촐한 기념비를 세운다.

 

서기 2001년 (양) 5월 11일
불기 2545년 (은) 4월 8일

거창군 가조면 동례리 출신
有限會社(유한회사) 武本(무본) 사장 배익천 삼가 씀


배익천 배익열 두형제분이 계셨기에 여법한 고견사를 복원할 수가있었다.

 

배익천선생사적비

배익천 배익열 두형제분

 

위 두분이 고견사의 중창불사를 하셨다.

 

배익천 선생의 사적비는 다음과같다.

 

 

우두산의상봉  고견사 발간 책자

배익천 배익열선생의 불사가 아니였으면

이처럼 멋진 가람이 탄생 할 수가 없었다.

삼가 존경하옵니다

포교사 동파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