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시작, 그 탐색(2)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 머무는 눈
제주일보
김길웅, 칼럼니스트
로버트 프로스트는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1961)에서 시를
낭송해 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촉발한 시인이자 시 낭송가다.
그는 농장에서 청바지를 바람에 일하다 워커 창이나 사과 궤짝에다
영감을 메모했다 한다. 사과 따기, 돌담, 울타리, 시골길 등 소박한
소재를 명쾌하게 쉬운 평어로 시를 썼다. 그의 시는 단순해
보이면서 심오한 뜻을 지녔다. 그만큼 인유(引喩)‧생략 등 수사를
거의 사용치 않았다. 그의 시는 이해하기 쉽고 엘리엇이나
파운드의 시는 난해하다. ‘그의 시가 이해되지 않으면 프로스트의 잘못,
엘리엇‧파운드 시가 이해되지 않으면 독자의 잘못’이라 할 정도다.
그만큼 프로스트가 독자들을 위한 시인이 되고자 낯익은 자연시를
썼다는 얘기다. 그래서 권위의 퓰리처상을 네 번씩이나 받았을까.
필자도 잘 알려진 그의 시
‘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을 좋아한다.
거기엔 연유가 있다. 시에 나와 있는 ‘인생과 길’ 두 낱말 때문이다.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인생이다. 삶은 선택하는 것이다.
젊은 날 시인(화자)은 ‘두 갈래 길’ 앞에 서서 서성거린다.
그 모습이 바로 ‘나’인 것 같다. 아니다. ‘나인 것 같다’가 아니라
분명 나다. 나인 게 명확하다.
우리는 젊은 시절 적잖은 인생의 선택지 앞에서 얼마나 고민하고
배회하고 방황하는가. 혈기 왕성하다고 힘만 있다고 되는 일인가.
좋은 환경이라고 곧바로 뛰어듦이 용인되는가.
아니다. 인생은 그리 단순하고 소박한 게 아니다. 길은 뜻이다.
마음이다. 철학이다. 그리고 능력이다. 뜻과 마음과 철학과
능력이 잘 배합된 완전체 수단이 바로 길이다.
그 길은 한 생애를 지향해 저벅저벅 걸음을 옮겨 놓는 견고한 장치다.
우리는 종국에 선택한다. 선택된 길은 텍스트를 섭렵해 얻어낸 가장
아름다운 꿈이고 이상이다.
프로스트는 숲 속에 난 두 갈래 길 중 하나를 선택했지만,
나머지 하나는 버렸다. 양자택일은 모순이다.
시 속의 화자는 이미 그 모순 속에 갇혀 있는 게 아닌가.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딘가에서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훗날에’, ‘달라졌다고’라 했다.
창가일까, 불타다 사위어가는 저녁노을 앞에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그래서 시인은 긴 한숨을 내쉰 것이리라.
삶은 선택이다, 선택의 연속이다. 유한 인생, 너나없이 사람들은
두 갈래 길 앞에서 그중 하나를 선택한다. 그리고 가지 못한
나머지 길, 그 한 길에 대한 아쉬움에 회한을 느끼는 것이리라.
단순히 어떤 길을 걸었다는 것이 아니다. 인생에서 선택의 중요성,
결코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또 하나의 다른 기회를
포기했던 것에 대한 깊은 회한을 노래한 것이다. 그 회한의 모습이
흡사 드라마의 라스트신처럼 인상적이 아닌가.
프로스트가 두 갈래 길을 다 걸으려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가능하지 않은 길임을 잘 앎으로 더욱 아쉬워한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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