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燒酒)
제주신보
2019.11.21
김길웅. 칼럼니스트
가장 한국적인 술 하면, 막걸리와 소주다.
막걸리가 농부의 갈증을 풀어준다면, 소주는 도시 서민의 팍팍한 하루를
다독인다.
일하다 목 탈 때 두둑에 앉아 땀 훔치며 펑펑 부어 마시는 한 대접 막걸리는
일에 흥을 돋운다. 배 불고 피로도 풀리니 벽 쌓고 지붕 이는 격이다.
젊은 시절, 퇴근길 노작지근한 몸으로 직장을 나서며 몇몇이 발 닿는 곳이
선술집이었다. 한두 잔 하다 보면 취흥에 다음으로 이어진다.
소주는 취하면 흥겹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수작하며 오가는 대화에 술맛이 절로 난다.
몸이 비틀거리면서 또 다음으로 흐르니 가탈이다. 절제가 필요하다.
실은 좀 삐딱하게 하는 그 여백에 끌린다. 한겨울 혹한에 한잔 생각나는 술.
‘수작(酬酌)’이라 한다. ‘갚을 수(酬)’에 ‘따를 작(酌)’. 두 글자의 ‘유(酉)’는 주(酒)의
고속자로 술을 뜻한다. 술 단지 모양인데, 뒤에 물수(水) 변이 붙어 주(酒)가 됐다.
수작이란 주객이 혹은 친구끼리 술잔을 주고받는 것이다.
우애롭거니와 존중하는 예도가 스며있다.
그렇게 정을 나누니 자연 술자리가 주흥으로 넘실거린다.
한 조직이 원활히 돌아가려면 때로 수작은 선택 아닌 필수다.
술[酒]을 마시면서 자리가 점점 훈훈해 간다. ‘작(酌)’은 포용적이다.
‘짐작(斟酌)’은 술을 따를 때 넘쳐도 모자라도 예의가 아니니 가늠하는 것이다.
‘작정(酌定)’에 이르러 절로 고개 끄덕인다. 짐작한 후, 따를 양을 정한다 함이다.
무작정(無酌定)으로 하는 건 무례다. 후래삼배도 고얀 관행이다.
술 약한 사람에겐 ‘참작(參酌)’하면 좋다. ‘헤아릴 참(參)’, 상대의 주량을 헤아리는
배려다.
수작하면 절로 감흥이 인다.
즐기는 단계다. 다음으로 흐르면 ‘탐(眈)’해 술에 빠진다.
한 발 더 나아가면 ‘마칠 졸(卒)’이 들어가 ‘취(醉)’가 된다.
이제 그만 마시라는 적신호가 켜진다. 그래도 술잔을 더 잡고 있으면 ‘추(醜)’해진다.
끝내 귀신이 붙는 것이다. 술을 마시되 수작을 잘하면 참 즐겁고 유익한데,
수작이 제 궤도를 이탈하면 ‘괴물’이다. 절제하면서 아름답게 수작할 일이다.
옛 선비들은 산야에 침잠해 꽃과 새 그리고 폭포와 수작하며 시를 읊고 화폭에
산수를 담았다.
고상한 통섭이었다.
세상은 변한다.
불황에 더 잘 팔리던 서민의 소주가 비틀거린단다.
거리를 두고 살지만 우울한 소식이다.
주 52시간 근무제와 워라밸(work-life valance) 트렌드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다른 주류가 고전하는 속에서도 어간에 성장세를 유지해 온 게 소주다.
한데 소주 판매량이 역성장으로 2013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것.
4,5년 전만 해도 회식에 소주가 빠지지 않았는데, 패턴이 바뀌고 있다.
저녁을 피한 점심 회식, 영화관람, 공연 등 문화생활로의 이동은 생각지 못한 일이다.
음용 비중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주종에 대한 질문에 48.8%가 소주라 답했다니
놀랍다. 지각변동 수준이다. 소주에 새로운 변화 조짐이 고개를 쳐들었다.
초록색 병 탈출에서 저도수, 소용량으로 간다는 것이다.
업계 1위인 하이트진로가 진로이즈백으로 인기를 끌면서 만회에 나섰다는 소문이다.
소주 하면 흰병, 21도 노지 것을 찾는 주당들이 멀쩡히 숨 쉬고 있는 세상이다.
소주는 추운 날 첫 잔에 ‘커’ 하는 바로 그 맛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