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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불교대학

지리산 화엄사 전국 만일염불회 동참

by 동파 2018.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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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화엄사 전국만일염불회 동참


제6차 전국염불만일회 21차(2018년)년도 구례 지리산 화엄사에서
염불정진대회에 참석차 제주도에서 아침 비행기로 광주에 도착 버스를 이용하여
구례 화엄사에 도착하니 12시되었다.
 전국염불만일회 도반님들을 만나게되고 폭염의 더위도 잊어버리고 만남으로
악수를하고 서로가 반갑다고 껴안고
이래서 전국염불만일회 불자님들의 모임은 가장  아름다운 도반이다.

화엄원에서 법산스님의 격려사로 입제식이 시작되고,

화엄의 성지,불국토의 도량 화엄사에서
제21차 여름 염불정진대회 개최를 축하하여주시는

화엄사 덕문 주지스님의 환영사가있었습니다.
휴식의 시간도 없이 염불행(念佛行)즉

 "나무아미타불"명호를 부르면서
전국염불만일회의 우렁찬 염불소리에
힘차게!신나게!멋있게!염불합시다.

라는 구호로 2박3일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화엄사에서 제일 유명한 전각 각황전에서 저녁예불을하고,
전국염불만일회 동참 도반은 염불정진에 들어갔다.

2박3일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화엄사에서 제일 유명한 전각 각황전에서 저녁예불을하고,

만일염불은 본인과의 약속이다.

늘 염불을하면서

늘 108배를하면서

살아왔다.


제6차 전국염불만일회 제 1차년도는
1998년 8월6일 고성 건봉사에서 시작되었고

금번21차 이면서 7296일이 되었다.
 회향은 2025년도에 회향이다.
일상에서 108배를 생활화하였고

 "나무아미타불"를 변함없이 염불을하고있다.
금년에도

경기도 이천에서 오신 8십세가 넘은 보살님도 동참을하였다.
2025년에는 만일의 염불 수행이 끝나는 날이다
만일의 염불 회향을 문제없이 무난 할것이라고

나와의 약속을 다짐하여본다.
지리산 화엄사 두견새 울음소리를 들어가면서

밤이 깊어가도록 염불 정진을 계속되었다.


칠정례

화엄사 각황전에서 새벽예불을하면서 하루가 시작된다.
"지심귀명례 삼계대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불타야중"
내가 삼보에 귀의하여 매료된것은 칠정례다.

오늘은
화엄사 각황전에서

전국 염불 만일회원의 경건한 울림은 내 마음을 파도치게했다.
화엄사 도량에서 행선 염불을하면서 부도전 참배를하고 아침공양을했다.


화엄사 경내 해설

일주문에서 시작하여 차일혁 경무관 추모비, 일체유심조,화엄사 보제루,
대웅전,각황전를 자세하게 해설을하여 주신 태감(太鑑)스님의 일주문에서

대웅전으로 오르면서 설명을하여주었다.

화엄사의 해설은 다음과 같다.

지리산 화엄사 일주문

대웅전으로 오르는 길이 일직선상이 아니고 태극 무늬의

S자형으로 오르는 길이라는 것을 강조한 가람배치라고했다.



"지리산 화엄사" 현판은

인조14년(1636) 병자년 8월에 선조 제8왕자 의창군 광(義昌君 珖)
(1589-1645)이 썼다.당시 왕실은 풍미하던 한석봉체의 장중한 필법이다.

차일혁 경무관 추모비
차일혁 경무관은 1951년 5월 한국전쟁 당시 남부군 토벌작전에 참가했다.
당시 그는 빨치산의 근거지가 될 만한 사찰과 암자를 불태우라는 상부명령을 받자 화엄사
각황전의 문짝 만을 떼어내 불태웠고 상부에 “문짝만 태워도 빨치산의 은신처를 없앨 수 있다”고
보고해 천년고찰을 지켜냈다고 하여 여기 추모비를 세웠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보제루(普濟樓)

타 사찰을 보면 보제루 아래를 관통하는 길이 있지만

여기는 옆길로 하여 통로가 된것이 그 특징이다.

보제루의 주련은 다음과 같다.

信爲道元功德母
長養一切諸善法
斷除疑網出愛流
開示涅槃無上道
信無垢濁心淸淨
滅除慢恭敬本
亦爲法藏第一財
爲淸淨手受衆行

 믿음은 도의 으뜸이며 공덕의 어머니
 모든 선한 법을 길러내며
 의심의 그물을 끊고 애욕의 흐름에서 벗어나
열반의 위 없는 도를 열어보이네.
믿음은 때 묻은 탁한 마음이 아니라 청정함이요
교만을 멸제하는 공경의 바탕이자
또한 진리의 곳간에서 첫째의 재물이고
청정한 손이 되어 모든 행을 받네


보제루에 앉아서 스님의 명해설을 듣는 시간이 유익했다.

화엄사 대웅전

화엄사는 구례읍에서 동쪽으로 5.4km 떨어진 곳,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천년 고찰로
 544년(백제 성왕22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였다하여

절의 이름을 화엄경(華嚴經)의 화엄 두글자를 따서 붙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해회당과 대웅상적광전만 세워졌고

그후 643년(선덕여왕 12년) 자장율사에 의해 증축되었고
875년(신라 헌강왕1년)에 도선국사가 또 다시 증축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630년(인조 8년)에 벽암선사가 절을

다시 세우기 시작하여 7년만인
인조 14년(1636년)에 완성하였다고한다.

대웅전 현판

명부전

慈因積善誓救衆生  자인적선서구중생 
倘切歸依奚遲感應  당절귀의해지감응
掌上明珠光攝大千  장상명주광섭대천
手中金錫振開王門  수중금석진개왕문
常揮慧劍斷滅罪根  상휘혜검단멸죄근
業鏡臺前十殿調律  업경대전십전조율


자비의 인연으로 적선하고 중생구제를 서원하니
간절히 귀의하면 어찌 감응이 늦을까?
손바닥 위에 밝은 구슬은 대천세계를 비추고,
손 안의 쇠지팡이로 지옥문을 열어주네.
항상 빛나는 지혜의 칼로 죄의 뿌리를 잘라없애고,
업경대 앞에서는 시왕이 법률로 다스리 


                                                       서예가 여초(如初)선생의 휘호





각황전 보수중

1702년(숙종 28)에는 각성의 뜻을 이어받은 성능(性能)이 장륙전을 중건하였는데,
숙종은 이를 각황전(覺皇殿)이라 사액(賜額)하고 선교양종대가람(禪敎兩宗大伽藍)으로
 격을 높였다. 

요즈음  대대적인 보수를하고있다.


지난날의 각황전 모습


숙종이 쓴 각황전(覺皇殿)


 


 문화재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국보 제12호), 화엄사 4사자 3층석탑 (국보 제35호),
화엄사 각황전 (국보 제67호), 화엄사 영산회괘불탱 (국보 제301호),
화엄사 동,서 5층석탑 (보물 제132호,133호), 화엄사 대웅전 (보물 제299호),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 (보물 제300호), 화엄사 화엄석경 (보물 제1040호),
화엄사의 올벚나무 (천연기념물 제38호), 화엄사 보제루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9호),
화엄사 구층암 석등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2호)


각황전에서 옆길로 오르는 적멸보궁이 있다.

현재는 공사중이지만 촬영을했습니다.


효대

이은상 시


아침시간 행선 염불을 하면서 부도탑을 돌았다.


부처님 법은 인연법이라고하지만 평전스님의 사리탑을

여기에서 뵙게되어 놀라지않을수가 없다.

잠시 숙연하게되었다.

스님!

왕생극락하시옵고

다시 지리산 화엄사에서 주지소임을하여주시옵소서...


평전스님의 사리



  염불정진

휴식의 시간도 없이 염불에 정진하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전국염불만일회 안동일 회장님은 막간을 이용하여 제주에서 온
오문수 거사와 나를 호명하면서 책한권 선물주셨다.
"법정스님의 사유노트와 미발표원고"
"간다,봐라"
책까지 선물을 받고는 심신을 더한 감동을 받았다.

 오후에는 화엄원 마당에서 동안 수행하여 왔던
천수북과 천수바라 한국춤등을 봉행하였다.
저녁시간에는

동안 쌓아놓은 기량을 마음것 발휘하는 시간이 되어
지리산에 울려퍼지는 광염소나타가 아닌가!

밤8시30분

소원성취발원과 조상극락왕생발원으로 천도의식이 거행되었고,
자정이 지나도록 염불정진이 화엄원에서 계속되었다.


2박3일째 되는 날에(29일)화엄원에서

새벽예불을하고 계속 염불정진하고 8시30분에
 회향식이 거행 되었고
금년 전국만일염불은 마음속에 울림이 있는 의미가 가장 큰 정진기간이었다.
 
점심공양후

일행은 천은사를 경유 서울로가지만

오문수거사와 광주비행장으로 향했다.
화엄사를 떠나면서

화엄사 종무소에서

매월10800원 보시금을 자동이체를했다.

아울러

2박3일 동영상을 촬영하여주신
진조스님께 감사의 인사를 이 지면을 이용하여 올림니다.

감사했습니다.

2박3일의 전국염불만일회의 염불정진은

나를 다시 돌아 볼수가있고 동안 해이했던 삶을
가일층 충전하여 생활의 활력소가되는 기회가되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