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살면서 태릉을 찾는 일은 없었다.
선수촌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열심히 운동을 하는곳이대릉선수촌이다.
시간을 할애하여 모처럼 일요일 태릉 문정왕후의 능을 참배했다.
문정왕후(文定王后)
본관은 파평. 영돈녕부사 윤지임(尹之任)의 딸이다. 중종비 신씨가 즉위 직후 폐위되고,
제1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가 세자 호(岵:뒤의 인종)를 낳은 뒤 죽자,
1517년(중종 12) 왕비에 책봉되었다. 1545년 자신의 소생인 명종이 1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모후(母后)로서 8년간 수렴청정했다. 그동안 동생인 윤원형(尹元衡:소윤)에게 권력을 주어,
인종의 외척인 윤임(尹任:대윤) 일파를 제거한 을사사화를 일으켰다.
한편 보우(普雨)를 신임해 1550년 선교(禪敎) 양종(兩宗)을 부활시키고, 승과와 도첩제(度牒制)를
다시 실시하는 등 불교 부흥을 꾀했다. 1553년부터 명종이 직접 정치에 임했으나,
실제로는 문정왕후가 윤원형과 협력하여 정사에 계속 관여했다. 소생으로 명종·의혜공주(懿惠公主)·
효순공주(孝順公主)·경현공주(敬顯公主)·인순공주(仁順公主) 등 1남 4녀를 두었다. 능은 태릉(泰陵)이다.
문정왕후는 조선 불교 중흥을 위한 보우의 막강한 후견인 이였다.
문정왕후는 보우를 봉은사 주지로 삼아 조선 불교를 다시 일으키려 했다.
그 결과 많은 불교적 성과를 얻기도 했지만 유교와 성리학의 조선조에서
그 열기가 오래 가지는 못했다.
보우 스님은 문정왕후가 죽자 곧 바로 땡중, 요승으로 낙인찍어 제주도로
유배시키고, 절차도 없이 제주 목사 변협에 의하여 처참하게 매를 맞아
죽는 수모를 당했다.
허응당 보우대사 (虛應堂 普雨大師. ?~1565)
『조선시대 스님으로 호는 허응(虛應), 또는 나암(懶庵), 금강산 마하연
선방에서 15세 때 삭발. 1548년 명종(明宗)의 모후 문정왕후의 천거로
봉은사(奉恩寺)주지로 부임하여 불교 중흥의 대역사를 시작하셨다.
봉은사를 선종(禪宗) 총본사로, 봉선사를 교종(敎宗) 총본사로
정하여 고려시대 승과를 다시 부활시켜 서산, 사명, 영규와 같은 인물을 발굴했고,
스님들에게 도첩을 주어 지위를 향상시켰다.
18년 동안 모진 모함과 억압속에서도 피눈물을 흘리며 신명을 바쳐 중흥불사를
이룩하셨다.
문정왕후가 서거한 뒤 조정유신(儒臣)들의 참소로 제주도 조천땅 연북정에 귀양했고
제주목사 변협(邊協)의 몽둥이에 맞아 순교하심으로 험난한 한 시대를 제도하시고
열반에드셨다.
억불의 시대 조선 중기에 불교중흥을 위해 애쓰시다가 끝내 순교하신 보우대사는
한국불교사에 영원히 꺼질수 없는 진리의 횃불이시다.
한 몸을 던져 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움으로써 민족정신의 명맥을 이어 오늘이 있도록
하신 육신보살이시다.
허깨비가 허깨비 고을에 들어
오십여 년을 미치광이처럼 놀았네
인간의 영욕을 다 겪고
중의 탈을 벗고 푸른 하늘에 오른다.
幻人來入幻人鄕
五十餘年作戱狂
弄盡人間榮辱事
脫僧傀儡上蒼蒼
허응당 보우스님의 처절한 열반송이 남아있으며 제주도 조천에
순교비가 있다.
묘심행과 언니와 함께 간 태릉
미국 아트란타에서 7년만에 귀국하여 함께한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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