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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불교대학

위빠사나,붓다 근본수행과 거리 멀다.<동국대 황순일 교수님 글>

by 동파 2011.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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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사나, 붓다 근본수행과 거리 멀다”
동국대 황순일 교수, 불교평론서 지적
군부 야욕이 위빠사나 활성화의 배경
남방 상좌부 고대인도 상좌부와 달라
2011.03.10 17:09 입력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발행호수 : 1088 호
▲황순일 교수

초기경전의 관점에서 볼 때 붓다의 명상방법은 위빠사나와 큰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남방불교 자체가 근본분열 당시의 상좌부와는 관련이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위빠사나가 남방국가에서 중시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며, 위빠사나의 본고장처럼 여겨지는 미얀마에서 위빠사나가 활성화된 배경에는 대중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군사정권의 의도가 깊이 깔려 있다는 주장이 함께 제기됐다.

 

초기불교를 전공한 황순일 동국대 교수는 ‘불교평론’ 봄호에 게재한 ‘위빠사나는 초기불교 수행법인가’란 논문을 통해 “최근 한국에서 생겨나는 초기불교, 테라와다 교단, 남방불교 개념에 대한 혼란의 배후엔 그 지역의 사회적․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의 결여가 무엇보다 크다”며 “몇몇 경전과 논서류만을 바탕으로 위빠사나와 사마타를 비교하거나 미얀마에서의 명상체험을 통해 위빠사나만을 중심으로 초기불교의 명상을 논의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황 교수의 이같은 비판은 최근 미얀마 등지에서 수행을 체험한 학자와 스님들을 중심으로 남방불교의 위빠사나 수행법이야말로 테라와다 교단의 대표적인 수행법이며,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붓다의 근본적인 수행법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큰 관심을 모은다.

 

황 교수에 따르면 초기경전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붓다의 명상에 위빠사나적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마타적 요소가 핵심적이다. 황 교수는 ‘모든 번뇌가 파괴되는 깨달음에 도달하려면 지적인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초기경전의 무실라와 나라다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지혜’만으로 깨달음이 가능하다는 남방불교 위빠사나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그는 서구의 많은 학자들이 초기불교의 가장 일반적인 수행방법으로 색계 사선을 꼽고 있는 점을 소개한 뒤 “색계 사선은 위빠사나와 같이 인간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오온을 개별적으로 직관하면서 각각이 무상하고 괴로우며 자아가 아니란 점을 알아차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깨달음은 사성제와 색계 사선을 정점으로 팔정도를 실천함을 통해 가능한 것이지 요즘 위빠사나 수행자들이 주장하듯 지혜를 통해서 우리의 깨달음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미얀마 스님들이 탁발하고 있는 모습.

 

 

황 교수는 또 남방불교에서 위빠사나가 활성화 된 배경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하우트만(Gustaaf Houtman) 등 서구학자들의 최근 연구성과를 토대로 미얀마에서 위빠사나 수행이 대중들에게 설명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이후라고 강조했다. 특히 위빠사나 수행이 불교라는 테두리를 넘어서 국가적인 후원을 받으면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미얀마에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후임을 밝혔다.

 

황 교수에 따르면 군부는 마하시 사야도 등 몇몇 승려들을 성인화하고 위빠사나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장려했다. 이를 통해 군부는 미얀마 국민들이 나와 주변과 세계가 무상, 공, 무아임을 끊임없이 알아차릴 것을 강조함으로써 국민들이 세속적·정치적 문제에 무관심해지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반면 신통력과 자비심을 일으키는 사마타 수행은 군부정권 하에서 대중에게 전혀 권장되지 않았다. 1930년대 반식민지 운동의 지도자이자 사마타 수행자였던 사야산이 영국에 맞서 강력한 독립운동을 펼쳤듯 사마타 수행을 통해 마음을 정화하려는 노력이 국가를 정화하려는 차원으로 확대되는 것을 군부가 경계하고 막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황 교수의 분석이다.

 

황 교수는 또 현재의 남방불교가 근본분열 당시의 테라와다 교단과는 대단히 이질적임을 지적했다. 그는 스리랑카에서 태국과 미얀마로 불교가 전래된 것은 10~12세기로, 이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태국북부 등 여러 국가에서 탄트라 계열의 대승불교가 상당히 유포된 속에서 정체성과 연속성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 했다는 것. 특히 서구제국주의 침략 등 혹독한 역사의 부침을 겪는 동안 초기경전과 율장과는 전혀 다른 사리숭배, 기복신앙, 대승보살신앙 등 다양한 형태가 습합됐다고 밝혔다. 또 비교적 오랜 세월 전통이 잘 유지되던 스리랑카도 15~17세기 식민지 전통을 거치면서 자국의 불교전통은 완전히 사라지고 후에 미얀마와 태국에 의해 불교를 역수입해야 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현재 남방불교는 고대 인도불교의 상좌부와 직접 연결하는 것은 이해 부족”라며 “오히려 한국불교, 일본불교처럼 남방불교도 그 지역에서 토착화된 지역불교의 개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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