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은 출가 수행자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불효자다. 낳아 길러준 은혜를 등지고 뛰쳐 나와
마지막으로 뒤돌아 본 집에는 어머니가 홀로 계셨다.
비쩍 마른 할머니의 품속에서 혈연의 정을 익혔을 것 같다.
할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뒤늦게 친구로부터 전해 들었다.
외동 손자인 나를 한 번 보고 눈을 감으면 원이 없겠다고 하시더란다.
할머니의 팔베개 위에서 많이 들으면서 자란 덕일 것이다.
하나 더 해달라고 조르면 밑천이 다 됐음인지,
초등학생인 나는 혼자서 10리도 넘는 시골길을 걸어가 뽑은 경품은 원고지 한 묶음이었다.
운이 좋으면 사발 시계도 탈 수 있었는데 한 묶음의 종이를 들고 아쉬워했었다.
일찍이 인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름을 금옥, 고향은 부산 초량, 부산에 처음 가서 초량을 지나갈 때 어머니에 대한 소재는 할머니에 비하면 너무 빈약하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그리는 어머니의 상 백 사람의 교사에 견줄 만하다는데 지당한 말씀이다.
그 그늘에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이 따라야 한다.
집을 세 번이나 옮겨 다녔다는 고사도 어머니의 슬기로움을 말해 주고 있다. 두 번 어머니를 뵈러 갔다. 어머니는 사촌동생이 모시었다. 무슨 인연인지 이 동생은 어려서부터 자기 어머니보다 우리 어머니를 더 따랐다.
내려간 김에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는 무척 반가워하셨다.
점심을 먹고 떠나오는데 골목 밖까지 따라 나오며 내 손에 꼬깃꼬깃 접어진 돈을 쥐어 주었다.
용돈을 주고 싶은 모정에서였으리라.
오랫동안 간직하다가 절의 불사에 어머니의 이름으로 시주를 했다. 내 거처로 불쑥 찾아오신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고모네 딸을 앞세우고 불일암까지 올라오신 것이다. 혼자 사는 아들의 음식 솜씨를 대견스럽게 여기셨다. 어머니를 등에 업고 개울을 건넜다. 소식을 듣는 순간 아, 이제는 내 생명의 뿌리가 꺾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철저히 지키던 때라, 서울에 있는 아는 스님에게 부탁하여 나 대신 장례에 참석하도록 했다.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효행을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들이 모이는 집회가 있을 때면
4년 남짓 꾸준히 나간 것도 어머니에 대한 불효를 보상하기 위해서인지 모르겠다. 인자하고 슬기로운 모성 앞에서는 반쯤 기대고 싶은 . . .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뿌리이기 때문에 기대고 싶은 것인가
|
'어머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0) | 2012.05.09 |
---|---|
[스크랩] 어머니 발자국/김은영(낭송:고은아) (0) | 2011.11.09 |
울 엄마(동영상)퍼온 글 (0) | 2011.06.01 |
고비 고모 황갑상 시(詩) (0) | 2011.01.22 |
어머니 (0) | 2008.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