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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푸른 5월(노천명)

by 동파 2009.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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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5월

                                    노  천  명

 

靑瓷(청자) 빛 하늘이

육모정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

연못 창포 잎에

여인네 맵시 위에

감미로운 첫여름이 흐른다.

 

라이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는 正午(정오)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웬 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

 

밀물처럼 가슴 속으로 몰려드는 향수를

어찌하는 수 없어

눈은 먼 데 하늘을 본다.

 

긴 담을 끼고 외딴 길을 걸으며 걸으며

생각이 무지개처럼 핀다.

 

풀 냄새가 물씬

향수보다 좋게 네 코를 스치고

 

청머루 순이 벋어 나오던 길섶

어디메선가 한 나절 꿩이 울고

나는

활나물 호납나물 젖가락나물 참나물을 찾던

잃어버린 날이 그립지 아니한가, 나의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라도 부르자.

서러운 노래를 부르자.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새 모양 내마음은

하늘 높이 솟는다.

 

오월의 창공이여 !

나의 태양이여 !

 

 

 

 

 

 

          사    슴

                                 노  천  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冠(관)이 香(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族屬(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傳說(전설)을 생각해 내곤

어찌할 수 없는 鄕愁(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별을 쳐다보며

                                노  천  명

 

나무가 항시 하늘로 향하듯이

발은 땅을 딛고도

우리 별을 쳐다보며 걸어갑시다.

 

친구보다

좀더 높은 자리에 있어 본댔자

명예가 남보다 뛰어나 본댔자

또 미운 놈을 혼내 주어 본다는 일

그까짓 것이 다아 무엇입니까

 

술 한 잔만도 못한

대수롭잖은 일들입니다.

발은 땅을 딛고도

우리

별을 쳐다보며 걸어 갑시다.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노  천  명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 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오.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오.

 

 

 

 

 

 

 

      盧天命(노천명)  :  1913-1957. 본명은 泉鳴(천명). <시원>동인.

                                시집으로 <산호림>(1938). <창변>(1945). <노천명 시집>(1945).

                               <별을 쳐다보며>(1953). <사슴의 노래>(1955)등이 있다.

 

 

 

 

 

 

출처 : 여행의 참맛
글쓴이 : 새순女男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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