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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싶은곳

물같이 바람같이 사는 길

by 동파 2008.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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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같이 바람같이 사는 길
[법보시론]영담한지미술관 관장 혜원 스님
기사등록일 [2008년 12월 16일 15:10 화요일]
 

고려시대 나옹 스님의 출가 일화입니다. 소년에게 “무엇 때문에 중이 되려 하느냐”고 스승이 묻자 소년이 “삼계(三界)를 뛰어넘어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고 말하자 요연선사가 출가를 허락하였다고 합니다. 나옹이라는 법명을 받은 스님은 다음 게송을 지은 분으로 유명하지요.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물같이 바람같이 사는 것일까요. 욕심 없이 인연 닿는 대로 사는 것일까요. 저는 행자시절 계곡의 물줄기를 바라보다가 “어디서부터 시작하여 저렇게 흘러가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생겨서 물줄기를 거슬러 그 시원을 찾아 산 위로 올라 가 본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가도 그 시작을 알 수 없고 몸은 지치고 허기져서 그만 낙엽더미에 벌렁 누웠습니다. 그 때 하늘에 구름 한 점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저 구름이로구나!”

큰 발견이라도 한양 벌떡 일어나 한 바탕 손뼉을 치며 웃었지만 그것도 잠시 “구름은 어디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의문은 결국 물의 습습한 본질은 변하지 않은 채 인연 따라 응하면서 돌고 도는 물의 본성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중이 된 후 운문사 강원시절 불이문 밖 게시판에 실린 나옹선사의 게송을 보고 또 의문이 생겼습니다.

“물같이 바람같이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 틈만 나면 이목소 물가에 앉아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방학을 맞아 모처럼 서울 빌딩가를 걷게 되었을 때 문득 보았습니다.

“아, 물이 저렇게 서 있구나! 바람이 저렇게 서 있구나!” 저 건물들이 이루어 질 때, 꼭 필요하였던 물과 바람, 물과 바람이 없었다면 저 시멘트, 저 철근, 저 벽돌, 저 목재, 저 유리창들이 어떻게 손을 맞잡고 서로를 끌어 앉고 저렇게 굳건하게 서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꼭 필요하였던 물과 바람(공기)은 그 어디에도 자취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물과 같이 바람과 같이 이 세상에서 꼭 필요한 역할을 하고는 자기 공덕을 내세우지 않는 사람, 자취 없는 삶, 그런 인생을 살리라고. 그 때 걸망을 맨 젊은 수행자는 서울의 빌딩 숲을 물속을 걷듯 바람 속을 걷듯 참으로 가볍게 걸어가며 다짐했었습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구도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 길에서 저는 물같이 바람같이 반쯤은 그러하게 반쯤은 그러하지 못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 노력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연습이 따르지 않으면 허사가 되기 쉽습니다. 집착 없이 살라는 말씀도 이해는 하지만, 상황이나 인연에 맞닿으면 매이게 됩니다. 이것은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닥친 단면만 보기 때문입니다. 전체를 보려면 당장 일어나는 생각을 다만 몇 초라도 멈추고 마음을 비워서 앞과 뒤와 전체를 살펴본다면 이해되지 않는 것이 없게 됩니다. 이것은 연습을 해야만 얻어 집니다. 예를 들면 유치원 아이들은 선생님이 모이라고 호루라기를 불면 쪼르르 달려와 모입니다. 처음에는 더딘 아이도 있고 하던 놀이를 계속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복하여 연습을 시키면 얼마 안가서 호루라기만 불어도 하던 짓을 내동댕이치고 선생님께 달려오지요. 우리들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야생마처럼 달려 나간 마음을 불러들이는 호루라기가 부처님의 말씀이라면 우리는 말씀을 상기하여 돌아오는 연습을 해야만 합니다. 돌아 올 때는 하던 놀이를 미련 없이 내려놓고 어린아이와 같이 아무런 과거심이 없어야 합니다. 그 때, 원점에서 텅 빈 마음의 눈으로 상황을 들여다보면 지혜의 방편이 떠오르게 됩니다. 너그러운 여유와 미소가 나를 내려다봅니다. 성냄도 벗어 놓고 탐욕도 벗어 놓고 연기성이 이해될 때 금강경의 핵심인 무주상(無住相), 무아상(無我相)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요즈음 같이 남을 배려하는 너그러움이 요구되는 어려운 시절에 진정 물같이 바람같이 살아갑시다.

혜원 스님 영담한지미술관 관장


978호 [2008년 12월 16일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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