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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 특별 기고문(정부 종교 차별)

by 동파 2008.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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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이 9월 4일 ‘가만히 좋아하는 -헌법파괴·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를 보고-’ 제하의 기고문을 본지에 보내왔다. ‘가만히 좋아하는’을 ‘자제된 열정’으로 해석한 김지하 시인은 200자 원고지 230매 분량의 장문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일부 목사들의 잘못을 질타했다. 그리고 화엄개벽을 통해 세계문명사의 동아시아 이동에 대비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편집자

‘가만히 좋아하는’이란 말은 시어(詩語)로써 김사인(김思寅)시인의 최근 시집 제목이다.
‘자제(自制)된 열정(熱情)’의 뜻일 것이다. ‘가만히 좋아하는’은 참된 중도(中道)와 진정한 원만(圓滿)으로 가는 바른 길일 터이다.

최근 이명박정부의 불교에 대한 종교차별은 헌법파괴수준에까지 이르고 있고 여기에 대한 범불교적 비판은 평상의 수위(水位)를 이미 훨씬 넘어서 있다. 그럼에도 불교측은 자비와 관용의 종교답게 커다란 견인력(堅忍力)으로 파국(破局)을 봉합(封合)해왔다.

이명박정부의 멘토를 자임하는 일부 목사들이 ‘기독교공화국건설’을 운위(云謂)하고, 한 잔망스런 자는 왈 “스님들은 예수를 믿어야 한다. 불교가 들어간 나라는 다 못산다. 불교는 무너져야한다.”고까지 게걸(이것은 기독교교리의 핵심가치인 로고스(logos) 즉 말이라고 볼 수 없다.)대는 판국이다. 여기에 대해 불교측이 약간의 노여움을 비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 술 더 떠 ‘불교는 더 성숙해져야한다’고 호통을 치는 목사까지 나타났다.

정부종교차별, 헌법파괴 수준

그 목사가 누구일까? 나와 함께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도 받고 뒷날 ‘경실련(經實聯)’을 만들면서 내게 와 ‘경제평화를 통한 사회성숙’을 역설하던 진보개신교의 일꾼 서경석(徐京錫)목사가 아닌가!

하기야 그 쪽 동네 어떤 원로목사는 6월 29일 좌우측 극단주의자들의 폭력의 악순환 훨씬 이전 첫 촛불의 저 예쁘고 아름답고 슬기로운 평화행동에 대해서까지도 사탄이요 악마라고 못 박았으니 더 할 말 없다. 사실의 사탄이나 악마가 아니라 사탄이나 악마가 없이는 제일을 못하는 사람들, 극도로 유치한 분별지(分別智) 그 자체들인지라, 공연한 사탄이며 악마를 만들지 않으면 꼼짝도 못하는 ‘사탄 프렌드리’들인지라,
도대체 개신교 역사가 얼마나 됐다고 ‘성숙’운운인가? 불교역사, 불기(佛紀)가 올해 2552년임을 모르는가?

돌아가신 여해(如海) 강원용(姜元龍)선생 역시 목사님이다. 목사님이 언젠가 내게 이런 말씀을 들려주신 적이 있다.
“개신교 큰일 났어요. 신도가 엄청나게 줄어들어요. 몽땅 불교로 넘어가고 있어요. 서양이나 한국이나 다 똑같아요. 문명의 대세일까요?”
내가 물었다. “천주교는요?”
목사님 대답이다. “천주교는 좀 나아요. 여러 부분에서 상당한 정도 불교를 받아들이며 화해하고 자기안의 비슷한 부드러운 부분들을 강화하고 있거든요.”
“개신교는 안 그런가요?”
“안 그러죠. 욕하죠. 자꾸만 불교 욕만 하는 거예요. 꼭 반대로만 나가요. 큰일이에요.”

아항!
어떤 조사에 의하면, 현재 유럽의 불교신자가 천주교 쪽보다 더 많다고 한다. 미국경우도 한국 쪽 숭산계(崇山系) 백오십만에 달라이라마계까지 합치면 삼백만(?)근처이고 새벽에 일어나 근 이십분정도 명상선(zen)하는 사람만도 삼사백만이라고 한다.
국내에서건 국외에서건 나를 만난 백인지식인들은 예외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불교나 참선 얘기뿐이다. 녹색당, 생태주의자들은 한참 더 한다. 거기에 좌파 특유의 니코틴중독까지!

그런 자리에서 내가 한때 시(詩) 아닌 시를 읊은 적까지 있다. ‘입’이라는 제목이다. “기어 나오느니 난해한 참선타령이요. 기어 들어가느니 허무한 담배연기뿐이로다!”
이판에 유럽이나 미국에다 경제성장의 목을 걸고사는 ‘엠비노믹스’주제에 불교탄압? 생각이 있는 것인가? SK광고에도 나오듯 ‘생각이 에너지’인 시대다.
서방에서 대유행중인 ‘동방회귀(EAST TURNING)’란 말 들어 본적도 없는가?
‘인지자본(Cognition Capital)’이라거나 ‘영혼경제(Soul economy)’라거나 ‘문화자본주의(culture capitalism)’라거나 ‘주목경제(attention economy)’라거나 ‘상상력장사(imagination marketing)’란 말도 들어 본 적 없는가?

최근 월가의 농담은 아는가? ‘아메리카를 팔아 아시아를 사라’ 정말 아는가? 아시아의 콘텐츠나 이미지가 도대체 무엇인가?
중국인들이 착각하고 있듯이 공자의 충효사상인가? 충효에 의한 세계통일인가?
공자가 아니라 공자가 열광했다는 주역(周易) 즉, ‘이칭(Iching)’이고 더 나아가 공자를 비판했던 노자(老子)고 그보다 훨씬 높고 넓고 깊은 불교 바로 그것인 것을 아는가? 모르는가?

기껏 아는 게 토목사업 밖에 없는가?
세계경제의 진행은 분명 문화자본주의나 영혼경제 쪽이다. 다른 쪽에서 보면 이른바 정보화가 아니라 창조화(創造化)이니 확산은 곧 수렴인지라 콘텐츠중심방향이니 문화가 곧 자본인 셈이다.
물론 문화자본주의도 너무 지나치면 심층문화 자체로부터 역상(逆上)하는 ‘정신적 항체(精神的 抗體)’에 의해 그야말로 ‘OUT’되고 만다. 이른바 ‘깨달음’의 무서움이다. 그러나 그 적당한 제한범위 안에서는 미래시장의 중요한 한 요인이다.
이래도 모르는가?

호혜 바탕 교환구조 지향해야

일개 시인인 필자보다도 더 서구, 미국, 그리고 세계시장의 미래에 대해 잘 모른다면, 어떻게 앞으로 이른바 ‘잃어버린 십년’을 감히 탕감할 작정인가?
극소수의 유치하고 저급한 목사들의 엉터리 예수나팔에 빌붙어 낡아빠진 토목공사식 산업관 따위 하나로 뭘 어떻게 제대로 하겠다는 것인가?
세계시장, 특히 아메리카시장의 화살방향은 분명 아시아다. 이제부터의 아시아시장은 신자유주의 일변도의 시장구조를 어떤 경우에도 수정할 것이다.

‘재분배(再分配)’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호혜(reciprocity)’를 바탕으로 하는 신질서로써의 ‘교환’구조를 지향하게 된다. 바로 그 호혜(자리이타)와 직결된 아시아전통문화가 우선 다름 아닌 불교다. 그러니 바로 지금 불교측이 보여주고 있는 이 ‘가만히 좋아하는’양식의 반공(反攻)에 도리어 크게 감사하여야한다.
제발 고마운 줄 알라! 고마운 줄 아는 것, 그것이 기독교의 본질 아닌가!
호혜에는 기독교와 불교 사이의 호혜도, 동·서양사이의 호혜도, 하느님과 부처님사이의 호혜도 다 들어있으니 말이다.
난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시인이고 한 교수일 뿐.
아무것도 아니지만 들어둘 말이 있다면 귀를 쫑긋 세워 잘 들어두는 것이 진짜 C.E.O.아니던가?

그러나 염려하지 말라! 나는 불교신자가 아니다. 나는 동학당(東學黨)이다. 그러나 천도교신자도 아니다. 나는 그야말로 ‘나홀로 동학당’이다.
감옥에서 떼이야르신부의 창조적 진화론을 공부하다 그 기초이론인 내면의식과 외면 복잡성, 그것이 바로 동학의 기본진리임을 크게 알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동학은 증조부 이래 내 집안의 서럽고 서러운 피투성이 신앙체계였기 때문이다.
개벽꾼이로되 다만 ‘불교프렌드리’일뿐이다. 특히 화엄경(華嚴經)과 선(禪)쪽에…내가 기인 감옥살이에서 풀려 나올 때 아사이신문이던가 일본기자의 질문 “현재 당신사상의 현주소는 어디인가?”에 대해 “사상은 눈이다. 내 눈동자는 동학이고 내 망막은 불교다” 나의 대답이다.

그러나 불교관심은 동양 특히 동아시아사람, 더욱이 시인이라면 공통 아닌가?
본디 신라의 원효(元曉)·의상(義湘)이후 고려와 조선 전체를 일관한 불교사상은 화엄선(華嚴禪)이었고 나는 그것을 19세기 민족적 우주론인 동학의 개벽사상과 결합해서 다름 아닌 ‘화엄개벽론’을 창조하고자 공부하고 열심히 구상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 해도 왜 그렇게 말이 많은가 물을 수는 있겠다.

네 가지다. 그 까닭을 밝힌다.

현시국이 당신들처럼 엉터리로 해서는 참으로 큰 일 나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촛불초기부터 지금까지 현정부퇴진요구를 철저히 막아온 사람은 다른 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행여 잊지 말라. 예뻐서가 아니다. 극우와 극좌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국과 문명의 큰 변동의 때는 오고 있는데 나라안이 혼란하면 여러 가지로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과거 MB도움의 보은(報恩)

그것이 첫째요.
둘째는 이명박씨와 내가 한때 그러니까 1964년 한·일굴욕회담 반대운동때 투쟁하고 감옥가던 그 때의 동지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나는 말 몇마디라도 도울 수 있기를 원해서다.
셋째 이유가 또 있다.
이명박씨는 한때 내가 기인 독방감옥에서 풀려나 지독한 가난 속에서 그 휴유증으로 정신병원을 10여차례나 드나들며 고생하는 동안 이른바 민주화세력을 자처하는 나의 옛동지란 자들이 내가 연쇄분신자살을 말리고 생명사상을 제기한다는 바로 그 이유 하나로 나를 돕기는커녕 도리어 모략중상만 일삼고 다닐 때에 그래도 몇몇 다른 고마운 분들과 함께 나를 크게 도운 일이 있어서다.

보은(報恩)은 명분 이전이다.
지금에 와 내가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진심어린 충고 뿐이다. 물론 나는 안다.그가 누구말도 듣지 않는 대단히 압도적이고 자기 나름대로 매우 똑똑한 사람이란 것을,
그러나 나는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역시 ‘보은’은 명분 이전이기 때문이다. 〈계속〉


김지하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반체제 저항시인으로,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생명사상가로 활동하고 있는 시인이자 사상가이다. 1941년 2월 4일 전라남도 목포의 동학농민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났고 1959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한 이듬해 4·19혁명에 참가한 뒤,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남쪽 학생 대표로 활동하면서 학생운동에 앞장섰다. 1970년 『사상계』 5월호에 권력 상층부의 부정과 부패상을 판소리 가락으로 담아낸 담시 ‘오적’을 발표하면서 단숨에 박정희 군사 독재 시대의 ‘뜨거운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후 저항시 발표 및 저항운동에 전념하면서 연행과 석방, 도피 생활을 거듭하던 중 1974년 4월 체포되어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1주일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1980년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1984년 사면 복권되고 저작들도 해금되면서 민중사상에 독자적 해석을 더해 ‘생명사상’이라 이름하고 생명운동에 뛰어들었다.


964호 [2008년 09월 05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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