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모음 [스크랩] 풋여름 by 동파 2006. 4. 28. 728x90 풋여름 - 정끝별 어린나무들 타오르고 있어요 휘휘 초록 비늘이 튀어요 풋, 나무를 간질이는 빛쯤으로 여겼더니 풋, 나무 몸을 타고 기어올라 풋, 나무 몸에 파고들어요 가슴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었을까요 어느새 휘감치는 담쟁이 덩쿨은? 온몸을 뒤틀며 뿌드득 뿌드득 탄성을 지르며 풋, 나무 힘줄 세우는 소리 용트림하는 풋, 나뭇가지 초여름 저물녘 입술 자국에 겨드랑이부터 뚝 뚝 초록 진땀을 흘리고 있어요 풀물냄새를 풍기는 저 풋, 나무 담쟁이 치마폭에 폭 싸여 그만 파라, 뱀 나온다 속을 가진 것들은 대체로 어둡다 소란스레 쏘삭이고 속닥이는 것은 죄다 소굴이다 속을 가진 것들을 보면 후비고 싶다 속이 무슨 일을 벌이는지 속을 끓이는지 속을 태우는지 속을 푸는지 속을 썩히는지 속이 있는지 심지어 속이 없는지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다 속을 알 수 없어 속을 파면 속의 때나 속의 딱지들이 솔솔 굴러 나오기도 한다 속의 미끼들에 속아 파고 또 파면 속의 피를 보게 마련이다 남의 속을 파는 것들은 대체로 사납고 제 속을 파는 것들은 대체로 모질다 어떤 자리 어떤 손이 모과를 거두어 갔을까 내가 바라본 것은 모과뿐이었다 잠시 모과 이파리를 본 것도 같고 또 아주 잠시 모과 꽃을 보았던 것도 같은데 모과 이파리가 돋아나는 동안 모과 꽃이 피어나는 동안 그리고 모과열매가 익어가는 내내 나는 모과만을 보았다 바라보면 볼수록 모과는 나의 것이었는데 어느날 순식간에 모과가 사라졌다 내 눈맞춤이 모과꼭지를 숨막히게 했을까 내 눈독毒이 모과살을 멍들게 했을까 처음부터 모과는 없었던 게 아닐까 의심하는 동안 모과는 사라졌고 진눈깨비가 내렸다 젖은 가지 끝으로 신열이 올랐다 신음소리가 났고 모과는 사라졌고 모과가 익어가던 자리에 허공 한 주먹이 피었다 모과가 익어가던 자리를 보고 있다 보면 볼수록 모과는 여전히 나의 것이건만 모과즙에 닿은 눈시울이 아리다 모과가 익어가던 자리에서 미끄러지는 차연次緣의 슬픔 이 사랑의 배후 Amici Forever - Whisper of Angels 출처 : 세상의 제일 끝집글쓴이 : 똘레랑스 원글보기메모 : 공유하기 게시글 관리 동파 '좋은글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젊지도 늙지도 않은 중년인 우리는 (0) 2006.05.04 [스크랩] 시골아낙네들 (0) 2006.04.28 [스크랩] 눈물보다 아름다운 것. (0) 2006.04.26 [스크랩] 좋은 글 ㅡ 법정스님 글모음 (0) 2006.04.19 어머니,우리 어머니 (0) 2006.04.01 관련글 [스크랩] 젊지도 늙지도 않은 중년인 우리는 [스크랩] 시골아낙네들 [스크랩] 눈물보다 아름다운 것. [스크랩] 좋은 글 ㅡ 법정스님 글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