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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 김길웅 시인

미장원과 방명록

by 동파 2020.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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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장원과 방명록

김길웅. 칼럼니스트

 

코로나19로 뒤숭숭한데도 한쪽에선 트롯으로 신바람 났다.
불안을 덮고 시름 잊는 묘방이 되고 있을지 모른다.
약발이 특히 중·장년층에 미쳐 넋을 놓을 지경이다.
그 중심에, ‘아침마당’ 5연승과 왕중왕전을 섭렵한 임영웅이 우뚝 섰다.
그의 인기는 연령층, 도농, 동서의 경계를 넘어 난리다.
난리, 난리 해도 이런 생난리가 없다.

놀랍다. 타고난 그의 무겁고 낮은 중저음이 팬을 사로잡는다.
같은 노래도 그가 부르면 달라진다. 미풍에 내린 달빛이 스미듯 잠자는 음감을 깨워
심금을 울리고야 만다. 음치인 나 같은 사람도 듣고 있노라면 몸이 운율을 탄다.

그에게 끌리는 건 비단 노래뿐이 아니다.
언제 봐도 열일곱 소년같이 앳된 얼굴, 입가엔 순정해 풋풋한 웃음이다.
아무리 뒤져도 통속의 때가 묻어나지 않는 순진한 얼굴 아닌가.
궁핍을 견뎌내느라 편의점 아르바이트며 군고구마 장사를 했다지만,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없다.

얼굴처럼 착하고 올곧은 성정을 타고났다.
인기가 천정부지임에도 거드름 피우거나 교만하지 않다.
우리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하나에 모인다.
절대 흐트러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 평생 바르고 겸손할 거란 미더움.
그래서 그가 멋지고 사랑스럽다.

얼마 전, 모교 경복대학에서 학교를 빛낸 인물로 선정돼 받은 상금 500만 원 전액을
실용음악과에 기부했다. 후배를 챙긴 것. 그는 요즘 잘 나간다. 날개를 달아 날고 있다.
미스터 트롯 우승 이후 스타 덤에 오르면서 모델로 활동 중인 브랜드가 무려 12개다.
광고 수익이 최소 몇 십 억 이상일 거란다.

어머니에게 “미용실 영업은 안 하시냐? 묻자, “해야죠. 많은 팬들이 미용실을 찾아 주셔서,
가게를 하기로 했습니다.” 하더라는 얘기다. 미스터 트롯 시상식 때부터 몇 번 뜨더니,
아들의 인기가 절정을 치면서 찾는 발길이 이어진다는 것. 심지어 유튜버들까지 찾고 있어
미용실을 닫을 수 없다는 것이다.

빼놓을 수 없는 얘기가 있다, 멀리서 찾아오는 팬들에게 소소한 추억이나마 남기게 가게 앞에다
‘방명록’을 두고 있다잖은가. 팬들을 위한 작은 배려다. 바로 반응이 나왔다.
“임영웅의 착한 마음이 어디서 나왔겠느냐.” “팬들에 대한 어머니의 배려심이 깊다.”
감동 받았다는 얘기다.

가수는 팬들에 의해 완성되어 간다. 미장원과 방명록, 촘촘한 모정(母情)에서 나온 배려 아닌가.
“너무 감동적이다”, “임영웅 팬이라서 행복하다”는 훈훈한 얘기들이 이어진다.
모전자전,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다.

트롯이 열풍에 횝싸이며 유튜브에까지 범람해 엄청난 구독자와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임영웅은 유튜브를 장악해 대기록을 작성하고 있다. 그의 채널 〈임영웅〉은 지난 8일 기준,
구독자 수 78만 명을 자랑하며 총조회 수 2억6400만 회에 이른다.
해당 채널의 〈어느 노부부 이야기〉 영상은 2100만 회 이상 조회해 실로 ‘트롯 진’의 품격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보랏빛 엽서에 실려온 향기는
당신의 눈물인가 이별의 마음인가
한숨 속에 묻힌 사연 지워 보려 해도
떠나버린 당신 마음 붙잡을 수 없네
오늘도 가버린 당신의 생각엔
눈물로 써 내려간 얼룩진 일기장에….’

남의 노래도 자기 고유의 소리를 낸다.
감미로운 목소리에 실려 ‘보랏빛 엽서’ 한 장 날아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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