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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다 지나도록 손대지 않고 쓰지 않는 물건이 쌓여 있다면 그것은 내게 소용없는 것들이니
아낌없이 새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부자란 집이나 물건을 남보다 많이 차지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불필요한 것들을 갖지 않고 마음이 물건에 얽매이지 않아 홀가분하게 사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부자라고 할 수 있다.
노년의 아름다움이란 모든 일을 담담히 받아 들이고,
남에게 양보 할 수 있는 너그러움에 있음을 잊지 말 일이다.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아름다운 얼굴이 추천장이라면 아름다운 마음씨는 신용장이라면서
2007년 10월21일 가을 정기법회에서 직접 법문을 들었습니다.
1989년 8월6일
묘심행 보살과 여름 휴가로 송광사 불일암을 찾았습니다.
그때 후박나무아래 나무의자에 앉아 스님의 잔잔한 법음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보조선사의 법어집 "밖에서 찾지말라" 책을 선물받았습니다.
길상사 설법전에 분향소를 마련했습니다.
이른새벽 분향소를 찾아 경건한 마음으로 3배를 올렸습니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 일주문
제가 살아오면서 제일 큰힘이 되어주신 법정스님!
늘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른 새벽 길상사에서 분향하고 돌아와 여기 자국을 남겨봅니다.
2010년 3월12일 남대문시장 미도양행 정 동파 합장하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 |||||
죽어 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 |||||
생과 사는 결코 절연된 것이 아니다. | |||||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나를 부를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 |||||
준비만은 되어있어야 할 것이다. | |||||
그러므로 나의 유서는 남기는 글이기보다 지금 살고 있는 | |||||
'생의 백서白書'가 되어야 한다. | |||||
그리고 이 육신으로서는 일회적일 수밖에 없는 죽음을 당해서도 | |||||
실제로는 유서 같은 걸 남길 만한 처지가 못 되기 때문에 | |||||
편집자의 청탁에 산책하는 기분으로 따라 나선 것이다. | |||||
누구를 부를까 ...? | |||||
유서에는 흔히 누구를 부르던데? | |||||
아무도 없다. | |||||
철저하게 혼자였으니까. | |||||
설사 지금껏 귀의해 섬겨온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는 결국 타인이다. | |||||
이 세상에 올 때도 혼자서 왔고 갈 때도 나 혼자서 갈 수밖에 없다. | |||||
내 그림자만을 이끌고 휘적휘적 삶의 지평을 걸어왔고 | |||||
또 그렇게 걸어갈 테니 부를 만한 이웃이 있을 리 없다 | |||||
물론 오늘까지도 나는 멀고 가까운 이웃들과 서로 왕래를 하며 살고 있다. | |||||
또한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 |||||
하지만 생명 자체는 어디까지나 개별적인 것이므로 | |||||
인간은 저마다 혼자일 수밖에 없다. | |||||
그것은 보랏빛 노을 같은 감상이 아니라 인간의 당당하고 본질적인 실존이다 | |||||
고뇌를 뚫고 환희의 세계로 지향한 베토벤의 음성을 빌리지 않더라도, | |||||
나는 인간의 선의지善意志 이것 밖에는 인간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 |||||
온갖 모순과 갈등과 증오와 살육으로 뒤범벅이 된 이 어두운 인간의 촌락에 | |||||
오늘도 해가 떠오른 것은 오로지 그 선의지 때문이 아니겠는가. | |||||
그러므로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내가 할 일은 | |||||
먼저 인간의 선의지를 저버린 일에 대한 참회다. | |||||
이웃의 선의지에 대해서 내가 어리석은 탓으로 저지른 허물을 | |||||
참회하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 없는 것이다. | |||||
때로는 큰 허물보다 작은 허물이 우리를 괴롭힐 때가 있다. | |||||
허물이란 너무 크면 그 무게에 짓눌려 참괴慙愧의 눈이 멀고 | |||||
작을 때에만 기억이 남는 것인가. | |||||
어쩌면 그것은 지독한 위선일지도 모르겠다. | |||||
그러나 나는 평생을 두고 그 한 가지 일로 해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 |||||
자책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 |||||
문득문득 나를 부끄럽고 괴롭게 채찍질했다. | |||||
중학교 1학년 때, | |||||
같은 반 동무들과 어울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서였다. | |||||
엿장수가 엿판을 내려 놓고 땀을 들이고 있었다. | |||||
그 엿장수는 교문 밖에서도 가끔 볼 수 있으리만큼 낯익은 사람인데 | |||||
그는 팔 하나가 없고 말을 더듬는 불구자였다. | |||||
대여섯된 우리는 그 엿장수를 둘러싸고 엿가락을 고르는 체하면서 | |||||
적지 않은 엿을 슬쩍슬쩍 빼돌렸다. 돈은 서너 가락치밖에 내지 않았다. | |||||
불구인 그는 그런 영문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 |||||
이 일이, 돌이킬 수 없는 이 일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 |||||
그가 만약 넉살 좋고 건장한 엿장수였더라면 | |||||
나는 벌써 그런 일을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 |||||
그런데 그가 장애자라는 점에서 지워지지 않은 채 자책은 더욱 생생하다. | |||||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지은 허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 |||||
그 중에는 용서받기 어려운 허물도 적지 않을 것이다. | |||||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그때 저지른 그 허물이 줄곧 그림자처럼 나를 쫓고 있다. | |||||
이 다음 세상에서는 다시는 더 이런 후회스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 |||||
진심으로 빌며 참회하지 않을 수 없다. | |||||
내가 살아 생전에 받았던 배신이나 모함도 | |||||
그때 한 인간의 순박한 선의지를 저버린 과보라 생각하면 | |||||
능히 견딜 만한 것이다. | |||||
"날카로운 면도날은 밟고 가기 어렵나니 | |||||
현자가 이르기를 구원을 얻는 길 또한 이같이 어려우니라." | |||||
<우파니샤드>의 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 |||||
내가 죽을 때는 가진 것이 없으므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 |||||
번거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 |||||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은 우리들 사문의 소유 관념이다. | |||||
그래도 혹시 평생에 즐겨 읽던 책이 내 머리맡에 몇 권 남는다면, | |||||
아침 저녁으로 "신문이오" 하고 나를 찾아주는 그 꼬마에게 주고 싶다. | |||||
장례식이나 제사 같은 것은 아예 소용없는 일. | |||||
요즘은 중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한 술 더 떠 거창한 장례를 치르고 있는데 | |||||
그토록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이 만약 내 이름으로 행해진다면 | |||||
나를 위로하기는커녕 몹시 화나게 할 것이다. | |||||
평소의 식탁처럼 나는 간단 명료한 것을 따르고자 한다. | |||||
내게 무덤이라도 있게 된다면 그 차가운 빗돌 대신 | |||||
어느 여름날 아침에 좋아하게 된 양귀비꽃이나 모란을 심어 달라고 하겠지만 | |||||
무덤도 없을 테니 그런 수고는 끼치지 않을 것이다. | |||||
생명의 기능이 나가버린 육신은 보기 흉하고 이웃에게 짐이 될 것이므로 | |||||
조금도 지체할 것 없이 없애주었으면 고맙겠다. | |||||
그것은 내가 벗어버린 헌옷이니까... | |||||
물론 옮기기 편리하고 이웃에게 방해되지 않을 곳이라면 | |||||
아무데서나 다비茶毘(화장)해도 무방하다. | |||||
사리 같은 걸 남겨 이웃을 귀찮게 하는 일을 나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 |||||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 |||||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 같은 곳이다. | |||||
의자의 위치만 옮겨 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 번이고 볼 수 있다는 | |||||
아주 조그만 그런 별나라 - | |||||
가장 중요한 것은 | |||||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안 왕자는 지금쯤 장미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 | |||||
그런 나라에는 귀찮은 입국사증 같은 것도 필요 없을 것이므로 한번 가보고 싶다. | |||||
그리고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 |||||
누가 뭐라 한대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 |||||
다시 출가 수행자가 되어 금생에 못 다한 일들을 하고 싶다. | |||||
여성동아 1971년, 3월 호 | |||||
-법정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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