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論語)

논어(論語)위정편(爲政編)2-3

동파 2025. 6. 2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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樊遲曰 何謂也니잇고 子曰 生事之以禮하며 死葬之以禮하며 祭之以禮니라

樊遲가 "무엇을 이르신 것입니까?"하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살아계시면 禮로 섬기고, 돌아가시면 禮로 장사지내고, 禮로 제사지내는 것이다."

生事葬祭는 事親之始終具矣라 禮는 卽理之節文也라 
人之事親을 自始至終에 一於禮而不苟면 其尊親也至矣라 是時에
 三家僭禮라 故로 夫子以是警之라 然이나 
語意渾然하며 又若不專爲三家發者하니 所以爲聖人之言也라

 ○ 胡氏曰 人之欲孝其親은 心雖無窮이나 而分則有限이니
得爲而不爲와 與不得爲而爲之는 均於不孝라 所謂以禮者는 
爲其所得爲者而已矣니라

살아계실 적에 섬기고, 돌아가셨을 적에 장사지내고, 제사지내는 것은, 
부모를 섬기는 처음과 끝이 갖추어진 것이다. 禮는 곧 理의 節文이다. 
사람이 부모를 섬김에 처음부터 끝까지 禮대로 한결같이 하고 
구차히 하지 않는다면, 부모를 높임이 지극한 것이다. 
이 당시 三家들은 禮를 참람하였으므로 부자께서 이것으로써 경계하신 
것이다. 그러나 말씀한 뜻이 모가 나지 않고 원만하며, 
또 오로지 三家만을 위하여 말씀하시지 않은 것 같으니, 
이 때문에 성인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胡氏가 말하였다. " 사람이 부모에게 효도하고자 함은 마음은 비록 끝이 
없으나 分數는 한계가 있으니, 분수에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것과, 
분수에 할 수 없는데도 하는 것은 똑같이 不孝이다. 
이른바 禮로써 한다는 것은 자기 분수에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인 것이다." 

6. 孟武伯問孝한대 子曰 父母는 唯其疾之憂시니라
맹무백이 孝를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근심하신다."

武伯은 懿子之子니 名?라 言父母愛子之心이 無所不至나 
唯恐其有疾病하여 常以爲憂也라 人子體此而以父母之心爲心이면
 則凡所以守其身者自不容於不謹矣니 豈不可以爲孝乎아 
舊說에 人子能使父母로 不以其陷於不義爲憂하고 而獨以其疾爲憂라야 
乃可爲孝라하니 亦通이니라

孟武伯은 孟懿子의 아들이니, 이름은 ?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르지 않는 데가 없으나 오직 자식에게 
질병이 있을까 염려하여 항상 근심함을 말한 것이다. 
자식이 이것을 본받아[體] 부모의 마음으로 마음을 삼는다면, 
모든 그 몸을 지키는 것이 스스로 삼가지 않음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니, 
어찌 孝가 되지 않겠는가. 옛 주석[舊說]에 '자식이 부모로 하여금 자식이 
不義에 빠지는 것을 근심하게 하지 않고, 오직 자식의 질병을 근심하게 
하여야 孝가 될 수 있다.' 하였으니, 이 역시 통한다. 

7. 子游問孝한대 子曰 今之孝者는 是謂能養이니 至於犬馬하여도 
皆能有養이니 不敬이면 何以別乎리오

子游가 孝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금의 孝라는 것은 <물질적으로> 잘 봉양한다고 이를 수 있다. 
그러나 犬馬에게도 모두 길러줌이 있으니, 공경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

子游는 孔子弟子니 姓言이요 名偃이라 養은 謂飮食供奉也라 
犬馬는 待人而食하니 亦若養然이라 言人畜犬馬에도 皆能有以養之하니 
若能養其親而敬不至면 則與養犬馬者何異리오 甚言不敬之罪니 
所以深警之也시니라 
○ 胡氏曰 世俗事親에 能養足矣라하여 狎恩恃愛하여 
而不知其漸流於不敬이면 則非小失也라 子游는 聖門高弟니 
未必至此로되 聖人直恐其愛踰於敬이라 故로 以是深警發之也시니라

子游는 孔子의 제자이니, 성은 言이요, 이름은 偃이다.
 養은 음식으로 공양함을 말한다. 犬馬도 사람에게 의뢰하여 먹으니,
 또한 봉양하는 것과 흡사하다. "사람이 犬馬를 기를 적에도 
모두 음식으로 길러줌이 있는 것이니, 만약 그 부모를 봉양만 하고 
공경함이 지극하지 않으면, 犬馬를 기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不敬의 죄를 심히 말씀하신 것이니, 
깊이 경계하신 것이다. 
○胡氏가 말하였다. "세속에서 부모를 섬김에 
있어 봉양만 잘하면 족하다고 여겨 은혜에 親狎하고 사랑을 믿어서,
 점점 不敬으로 흐르면 작은 잘못이 아님을 알지 못한다. 
子游는 聖門의 高弟이니, 반드시 이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나, 
聖人은 다만 그 사랑이 공경보다 지나칠까 두려워하셨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깊이 경계하여 일깨우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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