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乾)·곤(坤)이 각기 동(動)·정(靜)이 있으니, 사덕(四德)에서 보면 정(靜)은 체(體)이고 동(動)은 용(用)이며, 정(靜)은 따로이고 동(動)은 서로 사귄다. 건(乾)은 일(一)이어서 실(實)하므로 질(質)로써 말하여 대(大)라 하였고, 곤(坤)은 이(二)여서 허(虛)하므로 양(量)으로써 말하여 광(廣)이라 한 것이다. 하늘의 형체가 비록 땅의 밖을 포함하고 있으나 그 기(氣)는 항상 땅의 가운데에 행하니, 역(易)이 광대(廣大)한 까닭은 이 때문이다.
십익(十翼)은 모두 부자(夫子)가 지은 것이니, 스스로 ‘자왈(子曰)’이라는 글자를 놓을 수 없으니, 의심컨대 모두 후인(後人)이 붙인 것인 듯하다. 이치를 궁구하면 지혜의 높음이 하늘과 같아 덕(德)이 높아지고, 이치를 따르면 예(禮)로 낮춤이 땅과 같아 업(業)이 넓어진다. 여기에 유(類)를 취함은 또 청(淸)·탁(濁)으로써 말한 것이다.
天地設位어든 而易이 行乎其中矣니 成性存存이 道義之門이니라. 천지(天地)가 자리를 베풀면 역(易)이 그 가운데 행해지니, 이루어진 성(性)에 보존하고 보존함이 도의(道義)의 문(門)이다.”
【本義】 天地設位而變化行은 猶知禮存性而道義出也라 成性은 本成之性也요 存存은 謂存而又存이니 不已之意也라. 천지(天地)가 자리를 베풀면 변화가 행해짐은 지(智)와 예(禮)가 성(性)에 보존되어 도의(道義)가 나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성성(成性)’은 본래 이루어진 성(性)이요 ‘존존(存存)’은 보존하고 또 보존함을 이르니, 그치지 않는 뜻이다.
右는 第七章이라 이상은 제7장이다.
聖人이 有以見天下之賾하여 而擬諸其形容하며 象其物宜라 是故謂之象이요, 성인(聖人)이 천하(天下)의 잡란(雜亂)함을 보고서 그 형용(形容)에 모의(模擬)하고 그 물건에 마땅함을 형상하였다. 이러므로 상(象)이라 일렀고,
【本義】 賾은 雜亂也라 象은 卦之象이니 如說卦所列者라. 색(?)는 잡란(雜亂)함이다. 상(象)은 괘(卦)의 상(象)이니, 〈설괘전(說卦傳)〉에 나열한 것과 같은 것이다.
聖人이 有以見天下之動하여 而觀其會通하여 以行其典禮하며 繫辭焉하여 以斷其吉凶이라 是故謂之爻니, 성인(聖人)이 천하(天下)의 동함을 보고서 그 회통(會通)함을 관찰(觀察)하여 떳떳한 예(禮)를 행하며, 말을 달아 길(吉)·흉(凶)을 결단하였다. 이 때문에 효(爻)라 이르니,
【本義】 會는 謂理之所聚而不可遺處요 通은 謂理之可行而无所礙處니 如庖丁解牛에 會則其族而通則其虛也라. 회(會)는 이치가 모여 있어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을 이르고, 통(通)은 이치가 행할 수 있어 막힘이 없는 부분을 이르니, 포정(?丁)이 소를 해체(解體)할 때에 회(會)는 힘줄과 뼈가 모인 곳이요, 통(通)은 그 빈 곳인 것과 같다.
言天下之至賾하되 而不可惡(오)也며 言天下之至動하되 而不可亂也니, 천하(天下)의 지극히 잡란(雜亂)함을 말하되 싫어할 수 없으며, 천하(天下)의 지극히 동함을 말하되 어지럽힐 수 없으니,
【本義】 惡는 猶厭也라. 오(惡)는 염(厭)과 같다.
擬之而後言하고 議之而後動이니 擬議하여 以成其變化하니라. 모의한 뒤에 말하고 의논한 뒤에 동(動)하니, 모의하고 의논하여 그 변화를 이룬다.
【本義】 觀象玩辭, 觀變玩占而法行之니 此下七爻는 則其例也라. 상(象)을 보고 글을 살펴보며 변(變)을 보고 점(占)을 살펴보아 법받아 행하니, 이 아래 일곱 효(爻)는 바로 그 예(例)이다.
鳴鶴이 在陰이어늘 其子和之로다 我有好爵하여 吾與爾靡之라 하니 子曰 君子居其室하여 出其言善이면 則千里之外應之하나니 況其邇者乎아 居其室하여 出其言不善이면 則千里之外違之하나니 況其邇者乎아 言出乎身하여 加乎民하며 行發乎邇하여 見(현)乎遠하나니 言行은 君子之樞機니 樞機之發이 榮辱之主也라 言行은 君子之所以動天地也니 可不愼乎아. “우는 학이 음지(陰地)에 있으니 그 새끼가 화답하도다. 내 좋은 벼슬을 소유하여 내 너와 함께 연연해 한다.” 하니, 공자(孔子)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군자(君子)가 집에 거하여 말을 냄이 선(善)하면 천리(千里)의 밖에서도 응하니, 하물며 가까운 이에 있어서랴. 집에 거하여 말을 냄이 선(善)하지 못하면 천리(千里) 밖에서도 떠나가니, 하물며 가까운 이에 있어서랴. 말은 몸에서 나와 백성에게 가(加)해지며, 행실은 가까운 곳에서 발하여 먼 곳에 나타나니, 말과 행실은 군자(君子)의 추기(樞機)이니, 추기(樞機)의 발함이 영(榮)·욕(辱)의 주체이다. 말과 행실은 군자(君子)가 천지(天地)를 동하는 것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本義】 釋中孚九二爻義라. 중부괘(中孚卦) 구이효(九二爻)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同人이 先號?而後笑라 하니 子曰 君子之道 或出或處或默或語나 二人同心하니 其利斷金이로다 同心之言이 其臭如蘭이로다. “남과 함께 하되 먼저는 울부짖다가 뒤에는 웃는다.” 하니, 공자(孔子)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군자(君子)의 도(道)가 혹은 나아가고 혹은 처하며, 혹은 침묵하고 혹은 말하나 두 사람이 마음을 함께 하니, 그 날카로움이 금(金)을 절단한다. 마음을 함께 하는 말은 그 향기로움이 난초와 같다.”
【本義】 釋同人九五爻義라 言君子之道 初若不同이나 而後實无間이라 斷金, 如蘭은 言物莫能間而其言有味也라. 동인괘(同人卦) 구오효(九五爻)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군자(君子)의 도(道)가 처음에는 같지 않은 듯하나 뒤에는 실로 간격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금(金)을 절단함과 난초와 같다는 것은 다른 물건이 능히 끼지 못하여 그 말이 맛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초육(初六)은 깔되 흰 띠풀을 사용함이니 허물이 없다.” 하니, 공자(孔子)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진실로 그대로 땅에 놓더라도 가(可)하거늘 깔되 띠풀을 사용하니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삼감이 지극한 것이다. 띠풀이란 물건은 하찮으나 쓰임은 소중히 여길 만하니, 이 방법을 삼가서 가면 잘못되는 바가 없으리라.”
“공로가 있으면서도 겸손하니 군자(君子)가 종(終)이 있으니 길(吉)하다.” 하니, 공자(孔子)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공로가 있어도 자랑하지 않으며 공(功)이 있어도 덕(德)으로 여기지 않음은 후함의 지극함이니, 공(功)이 있으면서도 남에게 몸을 낮춤을 말한 것이다. 덕(德)으로 말하면 성대(盛大)하고 예(禮)로 말하면 공손하니, 겸(謙)은 공손함을 지극히 하여 그 지위를 보존하는 것이다.”
【本義】 釋謙九三爻義라 德言盛, 禮言恭은 言德欲其盛이요 禮欲其恭也라. 겸괘(謙卦) 구삼효(九三爻)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덕(德)으로 말하면 성대(盛大)하고 예(禮)로 말하면 공손하다는 것은 덕(德)은 성하고자 하고 예(禮)는 공손하고자 함을 말한 것이다.
“호정(戶庭)을 나가지 않으면 허물이 없다.” 하니, 공자(孔子)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난(亂)이 생기는 것은 언어(言語)가 계제(階梯)가 되니, 군주(君主)가 신밀(愼密)하지 않으면 신하(臣下)를 잃고 신하(臣下)가 신밀(愼密)하지 않으면 몸을 잃으며, 기미(幾微)의 일이 신밀(愼密)하지 않으면 해로움이 이루어지니, 이 때문에 군자(君子)는 신밀(愼密)하여 말을 함부로 내지 않는 것이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역(易)을 지은 이는 도적이 생기는 이유를 알았을 것이다. 역(易)에 이르기를 ‘질 것이면서 또 타고 있는지라 도적이 옴을 이룬다’ 하였으니, 지는 것은 소인(小人)의 일이요 타는 것은 군자(君子)의 기물(器物)이니, 소인(小人)으로서 군자(君子)의 기물(器物)을 타고 있다. 이 때문에 도적이 빼앗을 것을 생각하며, 윗사람을 소홀히 하고 아랫사람을 사납게 대한다. 이 때문에 도적이 칠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보관을 허술하게 함이 도적을 가르치며, 모양을 치장함이 간음을 가르치는 것이니, 역(易)에 ‘질 것이 또 타고 있는지라 도적이 옴을 이룬다’ 하였으니, 도적을 불러들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