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선물
스승의 날 선물
김길웅. 칼럼니스트
지난 14일, ‘안경 너머 세상’에 <씁쓸한 스승의 날>이란 글을 올렸다.
달력도 유정한가. 뒷날이 스승의 날, 토요일이라 공교롭게 쉬는 날이었다.
선생님들 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잘됐다 했을까.
학생들은 어땠을까. 어차피 학교가 쉬고 넘어가니 됐다 했을까.
선생님이나 학생이나 마음 무거운 건 마찬가지였겠지만, 월요일이면 이틀이
지나 있을 테니, 조금은 마음 추슬렀을지 모른다.
교단을 떠나온 지 16년째다.
시간은 많은 것을 지워 버리지만 학생들과의 추억은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입 본고사로 가팔랐던 그때, 힘겨웠던 일들이 눈앞에 주저리주저리 매달려
있곤 한다. 아마 평생 머릿속에 맴돌며 나를 그 시절로 불러들일 것이다.
학생에게 희비를 갈라놓던 합·불은 감격이면서 고통이었다.
쉬 잊힐 일이 아니다.
오래 교단에 몸담아 제자들이 많다.
곳곳에서 뜻밖에 만나 옛일을 회상할 때가 적지 않다.
언제 어디서 만나든 “선생님!” 하고 달려올 때면 이내 가슴이 뜨거워진다.
교직자가 누릴 수 있는 보람이고 최상의 행복이리라.
또 있다. 나는 연년이 스승의 날 두 제자로부터 선물을 받는다.
부천에서 신경외과의원을 하는 K 원장과 서울 S대 법대 K 교수에게서 보내오는
선물이다. 둘 다 환갑을 벌써 넘긴 나이다. 넥타이, 셔츠, 영양제까지 다양하다.
근년 들어선 화분도 보내온다. 스승의 날인 오늘은 인삼팬더 화분을 받았다.
뿌리가 콘크리트 바닥을 깨뜨린다는 강한 식물이다.
받자마자 안시리움, 게발선인장에 이어 반려 식물 3호로 줄을 세웠다.
베란다 창가 햇살 좋은 곳에 놓아 물을 분무해 주며 애지중지하려 한다.
한 제자는 홍삼순액을 보냈다. 유난히 쓴 액즙이다. 쓴 게 좋다 하고 또 보내준
성의를 생각해 고맙게 먹어야겠다.
곧바로 두 제자에게 인사 전화를 했다.
원장은 진료 중이고 교수는 출근길이었다. 바쁜 사람들이다.
안부에 곁들여 고맙다는 말만 하고 끊었으니 이야말로 인사치레다.
“모시고 식사라도 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습니다.”
그 말엔 제주와 육지라는 바다로 격해 있는 관념의 거리감을 훌쩍 뛰어넘는
느낌이었다.
해마다 저녁에 소주 한잔하는 자리가 있다.
제자 서넛이 몇 년을 이어 온다. 일흔을 목전에 둔 친구들이다.
올해는 건강을 이유로 극구 사양했으나 막무가내다.
카톡에 만날 시간·장소가 떠 있다. 스승의 날이 지나면 어떠냐는 분위기다.
술은 삼가고, 얼마 전에 나온 내 산문집을 들고 가 얘기나 나눌 참이다.
한 달 전 강의 나가던 춘강의 ‘글사모’를 내려놓았다.
한데도, 회장인 A 여류수필가가 회원이면서 원로작가 L과 함께 찾아왔다.
집 안은 불편한 때라 아파트 숲속 평상 가에 앉아 얘기하다 헤어졌다.
마음 스산했다. 회원들의 안부 편지와 카네이션 화분을 받으며 울컥했지만 삼켰다.
언제 다시 만난다는 기약이 없다.
돌아서는 두 분에게 손을 흔들며 한동안 서 있었다.
이 글을 굳이 쓰는 것은 절대 자화자찬하자는 게 아니다.
카네이션 한 송이도 학생 대표 손이라야 한다는 그 ‘김영란법’ 때문이다.
나는 선물로 카네이션을 화분 통째 받았다.
현직 교원에게는 안되고 퇴임하면 격리되는가.
부쳐 오는 선물을 어떻게 하며, 식사 한번 같이하자는 제자의 청을 외면해야 하나.
오늘은 이런저런 생각에 무척 쫓기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