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儒學)대학
알뜨르 비행장 문화유적
동파
2020. 11. 25.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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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뜨르비행장 문화유적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1670
일제 강점기
알뜨르 비행장의 콘크리트 격납고
최초에 알뜨르 비행장은 제주도민들이 대를 이어 농사를 짓던 농지 겸 목초지였다.
일제 강점기를 맞이한 후에는 일본 조선군이 모슬포 주민들을 동원하여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군용 비행장으로 건설하였다.
66 ha 넓이의 비행장 안에 폭 20m, 높이 4m, 길이 10.5m 규모의 20개 격납고가 세워졌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본격적으로 전초 기지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약 700 km 떨어진 중국의 도시인 난징을 폭격하기 위해 오무라 해군 항공대의 많은 전투기가
출격하였다.[1] 중일전쟁 기간중 2차 공사를 통해서 규모는 40만 평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1938년 11월에 일본군이 상하이를 점령하면서 오무라 해군항공대는 중국 본토로
옮겨졌고 이에 따라 알뜨르 비행장도 연습비행장이 되었다.
알뜨르 비행장의 Ki-61과 Ki-45 항공기
1942년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여 본격적요새화되어 264 ha로 학장되었다.
1944년 10월 3차 공사로 레이다 진지와 각종 지하 진지들이 건설되었고 1945년 2월 9일,
결호 작전이 승인되면서 연합국의 상륙에 대비하여 각 시설을 잇는 터널 네트워크를 형성되었다